세상에서 제일 싫은 기분이 배가 부를 때다.
그리고 방 바닥이 뜨거운 곳에서 잠을 잘 못 잔다.
배 부르고 등 따시다는 말이 상징적인 의미겠지만
배 부르고 등 따신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부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사람이 숟가락 내려 놓을 타이밍을 못 잡고
식욕에 못 이겨 밥 한 술 더 떠서 고생하는 사람이라고.
다행히 난 그 타이밍을 아주 잘 잡았다.
일단 배가 부르면 아무 것도 못한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남들은 먹는 걸로 푼다는데
난 정 반대다.
그래서 늘 촬영이 있는 기간이면 7-8킬로씩 빠지곤 했다.
이 며칠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듯 먹어댔다.
먹었다기 보다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공복감은 사라지고 포만감에 시달려 힘들 때까지 먹어댔다.
이전에 없던 행동이다.
헌데,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졌다.
한 시절을 탕진하는 기분.
허천병이 걸린 것 같다.
선배한테 전화를 했다.
녹두 부침개 좀 사 달라고.
책이며 먹을 것이며 늘 잘 사주는 선배다.
며칠 전엔 아프다니까 약속을 다 제치고 약을 지어 올 정도다.
54살인 두 아이의 엄마인데 생각이나 마음 씀씀이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 선배가 뜻 밖의 말을 했다.
"웬일이야? 전화도 다 하고?"
"빈대떡이 먹고 싶어서요. 녹두 빈대떡. 저번에 먹었던 그 집 빈대떡. 사 주실래요?"
"그래, 나와라."
"고마워요"
"자기 나 알고 지낸 후 생전 처음 전화 한 거 알아?"
"그랬어요? 몰랐어요. 그랬었구나"
"나도 고마워. 녹두 빈대떡이 먹고 싶어서 전화를 건 사람이 나라서"
햇수로 10년만이었다.
내가 전화 한 건.
'98년에 그 선배를 처음 만났으니.
나도 몰랐었다.
내가 처음으로 전화했다는 사실을.
늘 그 선배가 뭐 먹자, 보자, 가자, 등등 좋은 거 있으면 불러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항상 좋은 말만 해주는 고마우신 선배다.
평생을 배우로만 살 수 있다면,,,바라는 게 없다고 기도했는데 엄마까지 되었으니 난 참 잘 산 것 같애라며 늘 자랑스러워 하시는 분이다.
감사한다.
감기가 된통 걸렸다.
작년에도 한 번 걸렷었는데 올 해도 걸리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감기 같은 건 일생에 안 걸리고 살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