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이 뭐꼬?

monomomo 2007. 2. 9. 14:06

중질을 하는데 십년은 해야만 자유가 주어진단다.

주어진다기 보담도 찾을 수 있단다.

찾을 수 있다,,,

자유를 찾다니? 아니 그럼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란 말인가?

내가 알기론 누리는 거라 생각되어지는데.

어쨌든, 살다살다 그렇게 말 많은 사람은 첨 봤다.

스님이신데 전혀 스님스럽지 않은 스님.

만나는 내내 미치는 줄 알았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쉼표도 없이 계속 하셔서 어찌나 괴롭던지 벌떡 일어나 나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위해 사이다를 시켜서 벌컥벌컥 마시다가 숨이 턱 막혔다.

미안하긴 했지만 머리털을 쥐어 짜며 으으으으~~~하고 한 5초 정도 흔들었다.

영문도 모르는 스님.

답답하면 여행을 가란다.

여행이 주는 어쩌고 저쩌고 등등.

0.0001초도 견딜 수 없었다.

 

목탁 구멍의 기획이 영 땡기지 않아서 어떻게 거절할까? 고심 중에 다행이 여차저차 그 쪽에서 맞지 않아 일단 접는 걸로 결론을 내려서 마음이 무지 홀가분한 상태였는데 소 풀 뜯어 먹는 이야기만 계속하는 스님과의 대화가, 아니 대화라기 보다도 혼자 하시는 말씀이 날 돌게 만들었다.

 

선배랑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일단 나가서 스님을 배웅하고 우리는 도로 그 집으로 들어 가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집.

인사동에 있는 -여자만-이란 밥집 겸 술집이다.

영화감독 이미례.

내가 모시던, 그러니까 우리 동네 말로 오야붕, 사수가 하는 밥집이다.

서울에서 쉬 먹기 힘든 벌교 꼬막과 메생이 국을 파는 집이다.

어리굴젓도 일품이다.

매운 고추에 막 된장도 기가 막히는 집이다.

감독님께 물었다.

영화는,,,

응,,지금 준비 중이야. 다시 시높시스를 쓰고 있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답이 나와 곤란한 질문을 피해 답을 얻어 낼 수 있었다.

마흔 넘어 백두대간 횡단을 하면서 장뇌삼을 만들려고 새들에게 인삼 씨앗을 먹을 수 있도록 뿌리고 다니시다가 산 사람을 만나 결혼 하셔서 아들 하나 낳고 밥집을 하시면서 잘 살고 계시다.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성격이 좋으셨던 분.

남자들만 들시글 거렸던 그 시절 드센 영화판에서 6편의 영화를 만드셨으며 힛트작도 몇편 내셨다.

여전히 뵈면 기분 좋은 분.

50이 갖 넘으셨으니 이젠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 분과 나는 영화 두편을 만들었다.

지방 촬영이 있을 때면 그 분 팬티를 빨아 주면서 하늘 같이 떠 받들며 시중을 들었던 그 오야붕의 음식 시중을 받으며 술을 마시는데,,,말로 설명을 하기가...그랬다.

아,,,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그러면서 취했다.

 

선배는 뭔가가 답답했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남자랑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살고 있지만 결혼 생활 17년 중에 말하고 산 시간이 2년 정도 란다.

어찌나 잔소리가 심한지 좋게 말하면 자상하고 나쁘게 쫀쫀한, 좁쌀영감 같은 성격이란다.

지금도 말을 하시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선배 왈.

너랑 더는 못 살겠다. 우리 헤어지자. 이 말을 하는 순간 말을 한 마디도 안해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단다.

몇 년이고.

우수운 건 아이들 둘과 한 방을 쓰신단다.

방이 3개인지 4개인지 있는 40평이 넘는 아파트에서 살면서.

미스테리다.

그 선배 첫째와 둘째 사이 터울이 좀 진다.

결혼 하자마자 거의 남남처럼 살았는데(남편의 직업이 좀 좋다. 연봉이 억대가 넘으니. 이혼을 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체면상 아마 이혼을 안 했을 거라고 선배는 말했다.)

그런 선배에게 얼마를 가졌는지는 모르나 어마무시하게 돈이 많은 회장님이 관심을 보인단다.

아유우~~좋겠어요. 그 나이에~~.

내가 얼굴을 만지면서-아직 보드랍네. 뭐어~~- 라고 놀렸다.

생각해 봤단다.

자기도 사람인데 지금 남편과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이 뻔한데 그런 남자가옆에서 알짱대면 왜 난들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느냐고.

흔들릴 것 알면서 곁을 준다는 건 최소한 인간으로서 그러면 안된다고 늘 부르짖었었고 또 알면서도 넘어 간다는 것은 인간이 할 도리가 아니라고.

이건 도덕이나 사회적인 통념, 세상의 잣대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아니라고.

둘째를 갖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단다.

하여 날짜 계산해서 하루는 남편(7살 연하)을 불러서 말했단다.

"나 둘째 가져야 하거든? 그러니까,,우리 하자.

남편으로서는 별로지만 애들 아부지 하기엔 너 만한 놈도 없으니 내 애를 낳는데 니가 필요하다."

질색 팔색을 하던 남편과 그렇게 하룻밤을 치르고 낳은 둘째.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란다.

선배가 살기 힘드니까 이 아이를 보내서 웃고 살라고 보내 준 것 같단다.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된다고.

자기에게 기쁨을 준 아이에게 설령 자기가 남편과 헤어져 그 남자와 다시 맺어 산다 한들 그 행복이 얼마나 가겠으며 뭐 또 얼마나 짜다리 행복하겠느냐 이말씀 이셨다.

그리고 오래 간다해도 그렇게 낳은 아이에게 에미된 도리가 아니라고.

애들만(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 좀 더 크면 지금의 남편과 헤어질 것이라고 철석 같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가 나타나자 알 수 있었단다.

책임감이 얼마나 무섭고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부지 아닌가 싶어서 아~~남편하고는 못 헤어지겠구나라는 사실을.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약간 흔들리고 있는데 다잡는 중인 것 같았다.

나도 사람인데,,,라는 말 안에 침묵으로 말씀하신 선배.

어른 한테 이런 말 하는 건 우수웠지만 너무 대견스러워서 가만히 안아 드렸다.

잘 하신 생각이예요,,라는 말과 함께.

눈동자 양쪽 흰 자위가 핏발이 서며 빨알갛게 변하더니 일생에 안 보이던 눈물도 글썽이셨다.

 

근 간에 부부들 이야기를 여러 소스를 통해 들으면서 정말정말 미스테리하기만 하다.

친구는 그랬다.

이혼을 하려고 법원에 갔는데 몇주 후에 오세요.

그랬는데 그 몇주를 못 넘기고 화해가 되서 살고 있다고.

 

-이 뭐꼬? 이 뭐꼬?-

내내 머릿 속을 헤집고 다니는 화두 하나가 어지럽다.

 

요즈음 이 선배한테 매일 불려 나간다.

그제는 돈암동. 어제는 인사동. 오늘은 또 신림동이란다.

충무로, 여의도, 대학로 외엔 거의 안 나가는 동네들인데.

어디 축하 해 줄 일은 자꾸 뒷전으로 빼는데 눈물이나 뺄 정도로 힘겨운 일들을 하소연 할라치면 거절을 못하는 지랄 같은 성격 탓이다.

 

아,,도대체 이 뭐꼬? 이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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