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후회와 반성

monomomo 2007. 2. 16. 03:21

어제 동창생 녀석이 와서 밥을 샀다.

일년에 대 여섯번 와서 밥을 사 주는 녀석이다.

 

녀석이 말 끝마다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나오면서 7백만원을 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무슨 학교에서 돈을 줘?"

"응,,잠깐 댕겨 왔어."

"???"

"내가 한 두어명 봐부렀다"-전라도 사투리로 봐버린다는 이야기는 죽인다는 뜻이다-

"죽었어?"

"아니, 그냥 슬쩍만 봐 부렀어"

"너 조폭이었니?"

"아니, 그냥 쫌"

"너 쌈 잘해?"

"쌈아, 그 조폭 보스라는 것들이 뭔 쌈을 잘 해서 보스 한다냐. 다 소문으로 눌러 분 것이여. 그 카더라 통신을 잘 이용해야제. 다 허풍이여. 알고 보면 암것도 없당께"

"하하하"

"뭔 일 있으면 부탁해라. 내가 전국적으로 다 풀어 놨응께"

"알았다. 근데 그 학교서 뭐해서 돈 벌어?"

"달력 맨들었제잉. 달력 안 있냐? 쩌그 저런디 걸린 거, 저런 거 맹들었어"

"그랬구나~~"

"내가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학교 다닐 땐 쫌 거시기 했제만 사회서는아 어따 내 놔도 안 꿇리는 놈이다. 그라고 말이다 길거리서 뭐 파는 사람들 있잖냐? 거 왜 두부나 도토리 묵 파는 아줌마나 좌판들, 그거 대부분이 다 조직하고 연관돼 있어. 물건 대고 나눠 묵기하제. 목 대 주고. 너 그런 거 아냐?"

"그래? 몰랐어. 나 아는 분은 그냥 하던데?"

"그런 것도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다 그래야. 내 말이 맞당께."

"그렇구나아~~"

어쨌거나 학교 다닐 때 그 놈하고 말 한마디 해 본 기억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밥 먹자고 졸라대서 열번 거절하고 한 번 먹다가 거절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고 두달에 한 번꼴로 같이 밥을 먹는다.

"너랑 이렇게 밥도 먹고 술도 마시니 행복하다야. 아야,,너는 아 우리의 우상이었어야"

"웬 우상? "

"글짓기 하면 니가 도맡아 상을 탓고 또 장학퀴즈에 나갔을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냐?"

"글짓기야 뭐 다른 애들이 열심히 안 써서 그랬을 것이고 장학퀴즈는 장학금 준다니까 나가 본 거지. 하긴 한 5백명 정도 예비 시험을 봤는데 딱 한명 뽑더라만. 그 때 틀린 문제 기억해. 단답형 주관식이었는데 피리부는 소년의 작가를 마네인데 모네라고 써서 총 25문제 중에서 하나 틀렸거든."

고 2때 장학퀴즈에 나간 적이 있다.

차점자가 되서 한 번 더 나갔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그때 같이 출연한 신일 고등학교 학생 하나가 기억에 남았었다.

교복 칼라에 흰색으로 2밀리 정도 올라 온 그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것이 멋져 보였던 아이었는데, 감명 깊게 읽은 책 이야기 하라고 할 때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난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이야기 했다-에 나오는 제롬과 알리사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목소리가 참 좋구나 생각했었다.

그 학생이 어느 날 보니 아나운서가 되어 있었다.

한 때 동물의 왕국을 진행하던 강성곤 아나운서.

겨우 밥 한 끼 같이 먹어서 행복이라니.

나도 누구에겐가 행복한 시간을 줄 수 있구나 싶었다.

누구에겐가 행복일 때도 있었지.

피식 웃음이 났다.

아침에 전화기를 보니 전화를 무좌게 해 댔다.

후회한다.

통화는 했는지 어쨌는지 기억에도 없다.

이 무슨 억지인가 싶어졌다.

아무리 모성 애정 결핍이 주는 헛헛함이라 생떼를 부리며 이름 붙인다해도

이러는 내가 정말 싫다.

나쁜 년, 잘 좀 살 것이지.

지랄 같다.

왜 그랬을까?

괜한 핑계를 대 본다.

짜식은 왜 하필 와설랑 밥은 사가지고,,,

어쨌든 미안하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만 엊나가는 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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