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온 건 내 나이 딱 마흔 살 되던 해였다.
베개를 베고 모로 누워 한쪽 팔에 책을 끼고 읽는데 갑자기 글자들이 흩어졌다.
눈을 몇 번 깜박여보다가 예각이던 팔의 각도를 조금 넓혀 둔각으로 만들어 책을 조금 멀리 떼자 선명하게 보였다.
어허어허~!!
이런, 나 원 참.
모든 글자들을 나도 모르게 조금 멀리 떼고 미간을 찌프리며 읽게 되는 것에 슬슬 적응이 되면서 익숙해졌는데 올해부턴 또 온 세상이 안개에 낀 것 마냥 희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약병의 글자나 술병의 글자들은 돋보기를 써야만 보게 된지 이미 오래 된 터라 그려러니하고 당연스레 받아들여졌는데 시야가 뿌옇게 보이자 그냥 실실 웃었다.
별거 아니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세월이 어찌 나만 비켜 갈손가 싶은 마음에.
하긴 흰머리가 80% 이상이니 뭐,,대충 그렇다쳐도(표현 불가)
마흔 세살부터 오후만 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열이 나더니 올 들어서 부턴 이제 허벅지가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역시나 갱년기 증상이란다.
쩝,
좋다.
늙어 가는 것이 난 아주 마음에 든다.
지나간 시간 만큼 헐떡거리면서 살아야 할 시간이 점차 줄어 든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일 외엔 목숨을 걸만큼 무엇이 미쳐보지 못한 지리한 삶을 살았지만
일로서 충분히 난 설레는 생활을 했다고 자부한다.
것도 마지 못해 하는 일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죽을 것 같이 턱밑까지 차오르던 가쁜 호흡에 섞여 나오던 헛헛증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단지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80도 넘었는데 생에 집착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나라고 해서 다른 이들과 다를 바 하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분당벽화를 그려 가면서도 먹거리에 혹은 생에 연연해 하며 살려고 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정지.
그렇게 생의 소실점 밖으로 점차 밀려나 소멸 될 날이 가까워 온다는 것.
좋은 일이다.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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