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친구가 왔다.
그녀와 나 7살 때부터 친구였다.
거의 같이 살다시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다.
저 번에 한국 가면 나 즐겁게 해 주고 오라고 해서 스텐드 바에 같이 갔던 이가 이 친구 남편이다.
영화 실패 후 죽기로 결심하고 맨 처음 보고 싶었던 친구라서 두번이나 그 친구를 보러 미국엘 갔다 왔다.
그 친구는 미국 체류 기간 내내 딸과 함께 자는 방에 와서 잤고,
날 교회를 데리고 다니면서 기도를 했고,
어느날 예배시간에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와 닿아 다시 살아보기로 생각을 고쳐 먹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날도 내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해 준 친구다.
그 친구를 보러 지난 5월에도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가 지금하는 일을 돕기 위해 취소를 하고 내내 후회했었는데 그 친구 오빠가 쓰러져서 보름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어서 잠시 다니러 왔다.
그 오빠가 썩은 사과를 사 와서 나 아니면 살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사왔다고 안 썩은 곳만 골라 먹으라고 말한 오빠다.
덕분에 각도에서 친구들이 올라왔다.
각종 반찬들을 해 가지고 우리집에서 모였다.
해남 촌년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한 상 가득 채워 밤새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친구와의 짧았던 2박 3일.
좋은 일로 나왔으면 몽땅 해남으로 가서 바다도 보고 그럴 수 있었으련만,,,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난 결혼을 한 친구들과 이야기 할 것이 별로 없어서 내내 무수리만 했다.
무수리를 하면서 주방에서 친구들이 신혼 때 울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절대 이해 할 수 없지만 너무 웃겨서 옮겨 본다.
사례1: 밥 상 물린 후 물 떠오라는 말에 울었단다.
그 말이 그렇게 섭섭 하더란다. 자기는 결혼 전에 자기가 한 번도 물을 떠다가 누구에게 줘 본 적이 없었으므로. 이 후 남편의 목소리 톤만 높아져도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나 어쨌다나?
사례2: 남편이 야~~ 손 크다 한 번 대 보자, 그러면서 자기 손을 대려고 다가 오는 남편의 손을 잡고 또 펑펑 울었단다. 이유인 즉은 그 친구는 손이 큰 것이핸디캡이었는데 남편이 그 맘을 몰라 주고 손 대보자고 해서 어찌나 야속하고 서럽던지 펑펑 울었단다. 들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사례3: 찌개가 밥상에 5분만 늦게 올라도 화를 내는 남편의 표정을 보고 울었단다.
뭐 기타등등 많았는데,,다 까먹었다.
어찌나 우습던지 뭐라고 볼펜으로 메모랍시고 적어 놨는데 간단하게 중요한 것만 적어놔서 그런지 문장을 만들 수 없다. 그 중요한 단어를 읽어도 그 때 말이 떠 오르지 않는다.
너무 웃겨서 두고두고 웃을라고 적어 놨는데,,,세상에나 이렇게 까먹을 줄이야.
이제 메모도 자자세세하게 해야지 안 그러면 모른다.
깡패 같은 세월이 그냥 지나쳐 주지 않는 다는 걸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서울역" 이라고 적어 놓은 건 뭔지 알겠다.
그 친구를 다른 친구가 서울역에서 만나서 우리집으로 데리고 오기로 했는데 서울역에서 내리고 보니 서울역이 너무나도 커서 아,,,이걸 어쩌나 그러고는 잠시 헤매다가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걸어 만나서 왔단다.
참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가 해남 촌년들 아니랠까 봐 그 넓은 서울역에서 만나자라뉘.
몹시 피곤하다.
전쟁을 치르듯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거꾸로 매달아 놔도 한달이다.
군대 제대날 세듯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내 오늘을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후회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스스로 칭찬하고 싶다.
"장하다 모모~~!! 씩씩하다 모모~~!!"
이젠 영화를 위해서도 그럴 일 없겠지만 영혼을 파는 기분으로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마치면 진짜 여행을 자유롭게 떠날 것이다.
'그냥,,,그저,,,그렇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프로포즈. (0) | 2008.01.14 |
---|---|
돌기 일보 직전에. (0) | 2008.01.10 |
결혼을 하기로 했다. (0) | 2008.01.01 |
Nana Mouskouri - Deep And Silent Sea (0) | 2007.12.25 |
난생 처음 들어 본 사자성어. (0) | 2007.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