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아버님에 대한 잔존 기억.

monomomo 2002. 6. 14. 00:04





아버지의 사랑






아버님에 대한 잔존 기억.





1> 웃음소리.


“히힛!”

울 아부진 늘상 그렇게 웃으셨다.

히힛!이라고.

웃으실 때 마다 새로 해 넣은 금니가 아버님의 영혼처럼 반짝거렸다.

그랬다.

그 남자는,

더운 여름날에 뒷춤에 숨겨온 막대하드 건네 주면서도 ”덥지? 히힛!” 하고 웃었고,

시험지 내 보이면 “음 ! 몇 개 틀렸네? 전과가 있었으면 안 틀릴 수 있었을텐데, 히힛! 그래도 틀린 만큼

맞아야지? 다리 올려라! 히힛!” 하고 웃었다.

어릴 적 즐겨 읽던 만화 책 속 호야처럼

언제나 히힛! 히힛! 히힛!

그렇게 웃으셨다.





2> 화


아버님께선 살아 생전 욕은커녕 거칠은 말 한마디 않으셨던 분이다.

극도로 나쁜 표현을 했던 경우가 겨우

“거 참! 참참참 참! 몹쓸 사람들이구나!, 정신 없는 사람들…쯧쯧” 정도 였으니까!

그런 아버님께서 화낸 적이 딱 두 번 있으셨다.

그 한번은 내가 여덟 살 때였는데 밥을 안 먹고 학교에 가려 한다고 밥상을 엎었고,

나머지 한 번은 내가 열 여덟 살 때였는데 비료를 사려다 못 샀을 때 아버님의 화내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웃다가 뺨을 맞았었을 때이다.

나는 그때 뺨을 맞고도 너무나 신기해서 되물었다.

“아부지 진짜로 화났네?” 맞은 뺨이야 얼얼했지만 어찌나 신기했던지…….

논 바닥에서 벼가 벌겋게 타 들어 갈 때 아버님의 가슴도 함께 타 들어 갔었나 보다.

아버님은 화 낼 줄 모르는 분인 줄 알았는데…….

참고 산 것 뿐이지 그럴 땐 아버님도 화를 낼 줄 아는 분이셨다.





3> 향기


시제가 있을 때였다.

아버님은 시제가 끝나면 제주가 싸 주시는 짚 꾸러미를 덜렁덜렁 들고 오셨다.

그 꾸러미 안엔 몇 조각의 전과 떡, 조각난 과일들이 들어있었다.

그때는 물자가 풍부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통 과일 하나를 가져 가던가 그 꾸러미를 가져 가던가 선택을

했어야 했다.

나는 아버님이 가져 오시는 그 꾸러미를 좋아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가끔씩 유자를 들고 오실 때가 있으셨다.

그때마다 나는 뾰로뚱해져 가지고 투덜댄다.

“먹지도 못하는 유자는 왜 가져 와! 차라리 사과를 받아 오지!”

“히힛! 사과? 것도 좋지? 그런데 사과는 먹어버리면 똥 밖에 더 돼? 싯돌은 고와도 시궁창에서 놀고 유자는

얽었어도 선비 손에서 논단다. 사람은 모름지기 향기 나는 사람이 돼야한단다! 이거 봐라! 냄새가 아주 좋구

나!”

아! 아버지!

당신은 향기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4> 가르침


S# 방 (겨울, 낮-1967년)

오십대 중년의 남자 손주 같은 어린 딸을 데리고 공부를 가르친다.

아버지; 삼, 더하기 사는 얼마야?

어린딸; 칠

아버지; 아이고 잘하네 우리 딸. 히힛! 그러면 사 더하기 삼은?

어린딸; ???

아버지; 사 더하기 삼은?

어린딸; 몰라!

아버지; 삼 더하기 사는 아는데 사 더하기 삼은 몰라? 히힛!

어린딸; 웅!

아버지, 어린딸을 귀엽게 바라다 보다 성냥통에서 성냥알을 꺼낸다.

성냥알을 세개, 네개, 갯 수에 맞춰 모아놓은 후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 아버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눈만 말똥거리며 고개를 연신 갸웃 거리는 어린딸.

설명하기를 이내 포기 하는 아버지, 어린 딸을 끌어 안는다.

아버지; 그래! 고만 하자! 니가 아직은 여기가지 알 단계가 아닌 모양이다. 히힛!

아버진, 백번을 가르치다 모른다고 말해도 백 한번을 웃으면서 가르쳐 주셨다.

어린 딸이 알 때가 되길 기다리시며.

* 그런데 나는 아직도 덧, 뺄셈은 지산법을 쓴다.





5> 꿈

아버진 가끔씩 시조가락을 흥얼거리셨다.

여기 그 시조가락 기억 나는 한 대목을 씬으로 옮겨본다.

S# 툇마루 (여름, 낮, 1990년)

칠십이 넘은 노인과 중년의 딸 툇마루에 앉아 정담을 나누고있다.

노인, 눈을 지긋이 감고 시조 가락을 흥얼 거리고 그 옆의 딸 그런 아버지를 빤히 쳐다 보고있다.

노인; 꿈아! 꿈아! 무정한 꿈아! 왜 나만 놔 두고 너만 홀로 가느냐~~~~

시조가 끝나자 딸 아버지 수염을 만지며 묻는다.

딸 ; 아부진 꿈이 뭐야?

노인; 꿈? 그런 거 없다!

딸 ; 왜 혼자 가냐며? 그랬잖아! 그러면 같이 가고 싶은 꿈이 있었을 거 아니야?

노인; 히힛! 지금은 없다. 있다면 오래 사는 것이제”

딸 ; 오래 사는 게 꿈? 참나! 지겹지 않아? 나는 지금도 살기 싫은데?

노인; 떼끼, 무신 그런 몹쓸 소리를…….망할 노무 자슥.

딸 ; 진짜야! 할 수 없이 아부지 땜에 산단 말이야!

노인; 내가 뭘 어쨌다고 내 핑계야? 참참참,

딸 ; 아부지가 나를 가슴에 묻을까 봐! <멋 적음 감추려는 듯 키득키득 웃는 딸>

노인; <정색을 하며>시끄러버! 지금 니가 사는 게 심이 들어서 그란 모양인디, 유인(有人)이면 유토(有土)고

유토(有土)면 유재(有財)란다.

딸 ; 무슨 말씀! 인생 일생 부운생이요, 인생 일사 부운 멸이라!( 人生 一生 浮雲生, 人生 一死 浮雲 滅)다,

뜬 구름 같은 거야!

노인;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딸 ; 오! 노우! 네버! 에버!

노인;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이라니까! 어차피 나도 아들이 없고 너도 아들이 없으니까 우리 이담에

양로원에서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누가 이기나?

딸 ; 오케바리, 아부지 백 오십, 나 백살에 양로원에서 만나!

노인; 참참참! 큰 일이야! 워디서 저런게 나왔는지 몰라! 아무래도 내 자식이 아닌 모양이야!

<딸의 손을 끌어다 만지며>

새끼 손꾸락 꼬부라진 것 보면 내 새끼가 틀림 없는디? 별일이야! 히힛! 먹이 나 갈어라! 같이 붓글씨나 쓰자!



*아부지는 항상 내 밥이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우기면 됐으니까!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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