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직업.
석 달째 병원에 누워 계신 아버님 앞에서 엄마는 이런 말을 하셨다.
“저 인사 죽고 나서 약 안 대리는 날 하루만 살다가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
내 교복에서도 항상 한약 냄새가 났었으니까, 얼마나 지겨웠으면 그런 말을 하셨을까?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말을 듣고도 그냥 히힛!하고 웃고만 있던 아버님, 그러라고 하신다.
아버님에 대한 기억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늘 방안에 누워있거나 아니면 새벽에 리어카에
실려 병원으로 가거나, 학교 갔다 오면 동네 사람들이 마당 가득 모여 있는 그림들이다. 일년 중에 짧으면
한 달에서 길게는 육개월까지 늘 방안에 누워계셨던 아버님!
배를 가르는 큰 수술을 두번이나 하시고도, 또 수술을 하셔야 했을 때 너무 쇠약하셔서 마취에서 깨어날 수
있을는지 장담 할 수 없으니 각서를 써야 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안 아파 본 병이 없었다.
-병 백화점-
이름하여 내가 지어준 별명이다.
아버님께서 앓으셨던 병명을 열거 해 보면 다음과 같다.
폐결핵, 가슴애피(가슴앓이), 노이로제, 위궤양, 간장병(술도 일년에 한잔정도 마시고 담배는 하루에
한 가치를 폈는데도 평생을 메치오닌이라는 간장약을 드셨다.) 복막염, 기관지염, 담석증. 신장염..등등
남들은 평생에 한번 앓아 볼까 말까 하는 병들을 벅차도록 앓으셨다.
가히 병 백화점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버님께서는 결국 신장암으로 돌아가셨다.<아버님미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나의 머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 첫 생각은 -아! 울 아부지, 이제 안 아파서 좋겠다.-였다.>
그런데 그의 딸인 나는 술도 잘 마시고 담배도 잘 피우는데 아직 정기적으로 대 놓고 먹는 약이라고는
이 닦다가 가끔씩 넘어 가는 치약 밖에 없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이싸-
아버님은 아주아주 오랫동안 모기에 물리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버지! 당신의 직업은 환자였지요?
짱짱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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