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선생의 선물.
가뜩이나 잠이 없는데 우리집 창문 앞에 하필이면 가로등이 떠~억하고 서 있어서 내방은 밤에도 대낮을
방불케 할 만큼 환하다.
게다가 하필이면 아이보리색 브라인드여서 빛을 차단 하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다.
처음엔 수면 안대를 하고 자다가 할 수없이 안막 커튼을 덧대어 해 달았다.
잠자는데 있어서 효과는 별반 무!
그래도 안정감은 있었다.
창이 동쪽으로 나 있어서 낮에도 좀처럼 커튼을 젖히지 않는데 퇴근을 하자 커튼이 젖혀져 있었다.
나는 언니가 청소를 하느라 젖혀 놓은 것인 줄 알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닫았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잔 따르는데 베란다 걸개가 열려진 걸 보고 참참참! 정신이 없군 하고
또 의심 없이 걸개를 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습관적으로 손가락 부기를 체킹하기 위해서 침대 옆에 놓인 협탁 위에 항상 있던 반지를 찾았다.
그런데 없었다.
가끔씩 어른 거리는 영상에 시달릴 때 손에 쥐고 자곤 했던 십자가 목걸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서야 문득 커튼이 젖혀져 있었던 것에 대해 의심이 갔고 베란다 걸개가 풀린 것에 대해서도
의심이 갔다. 다시 커튼을 젖히자 창문이 열려져 있었다.
아뿔싸! 도 선생이 다녀 가신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팔찌를 찾아봤다.
없었다.
물론 우리 집에서는 내가 가장 귀중품이기 때문에 가져 갈 것도 없긴 하지만 딱 하나씩 밖에 없는 팔찌와
반지와 목걸이가 사그리 없어진 것이다.
나에겐 모두 의미 있는 물건이었다.
직접 산 것이긴 하지만 반지는 부기를 체킹 하는 용도로 쓰였고
목걸이는 두려움을 없애는 용도로 쓰였고……
팔찌는, 팔찌는 선물 받은 것이었는데…….
여자를 처음으로 본 곳이 룸 쌀롱이었다.
접대 할 일이 있어서 몇몇 남자들을 모시고 간 그곳에 몇명의 여자들이 들어왔다.
예전 같은 성격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이 씨알이 먹히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나는 접대를 해야 하는 특명을 받은 것을!
첨에 여자가 들어와 어떤이의 옆에 앉았을 때 그런 곳에 나올 여자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런 곳에 나오는 여자가 따로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여자는 술을 따르기도 하고 안주를 챙기기도 하고 가끔씩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그랬다.
다른 여자와 다를 바 없이…….
그런데도 왜 나의 눈엔 달리 보여졌을까?
나는 사람들이 조금씩 취해 가는 동안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남자들은 아주 많이 취해 있었다.
급기야는 여자에게 보기 흉할 정도의 행동을 하려 했고 여자는 괴로워 하며 피하고 있었다.
얼굴에 불쾌감이 역력히 드러났다.
나는 처음엔 말리다가 안되겠기에 일어 서서 화장실에 가기 전에 한마디를 했다.
“이 여자! 술집 여자예요.
그러니 돈 받고 작정을 하고 접대를 하는 사람이니 이 여자가 원하면 그래도 상관 없어요.
그런데 여자가 싫다고 하잖아요. 알아요? 그러면 하지 말아야죠!”
나는 남자를 밀치고 화장실엘 다녀왔다.
그런데 그때까지 그 둘은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었다.
또 한번 같은 말을 반복하자 남자는 속된 말로 쪽이 팔렸는지 그만 두었다.
어찌나 미안하고 화가 치미는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파하고 일일이 택시를 태워 보내든가 대리 운전을 시켜서 사람들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곳으로 들어갔다.
술을 한잔 사겠다고…….
그들을 대신해서 사과 한다고…….
정말 미안하게 됐다고…….
그러는 가운데 나도 취했다.
빗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모르는 천장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무스그? 사건인가?
낯선 침대에서 홀로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모르는 집이었다.
나는 타는 목마름과 뇨의를 느끼고 밖으로 나갔다.
“일어 났어요?”
헉, 어젯밤 그 술집에서 본 여자였다.
“어찌 된 일이죠?”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술을 마시다 테이블에서 자더라는 것.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 나길래 나쁜 사람 같지 않아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김을 재고 있었다.
조기 굽는 냄새도 났다.밥 끓는 냄새도 났다.
된장국 끓이는 냄새도 났다.
화장실에 다녀온 내게 찬물 한잔을 건네며 여자는 말했다.
“목 마르죠? 이거 마시세요. 그리고 출근 하셔야죠? 아침은 원래 안 먹는데 일하러 갈 사람이라 밥을 했어요.
밥 한상 차려 주고 싶었어요. 차려 드릴테니 드시고 가세요”
나 역시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 아침은 안 먹을 수가 없었다.
렌지후드 돌아가는 소리 때문인지 숙취 때문인지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왱왱거렸다.
식탁에 앉아 상을 차리는 여자의 앞 모습과 뒷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엄마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순수하게 나만을 위해서 밥상을 차리는 엄마.
여자가 건네 준 물을 마시자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섬뜩함이 평소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위장의 위치까지
어디쯤인지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마지막으로 찌게 뚝배기를 같다 놓고는 ”간이 맞을지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
김치가 떨어졌어요! 드세요!” 연이어 여자가 한 말이었다.
나는 여자와 밥을 먹었다.
맛은 고사하고 정신도 우망좌망하는 가운데 내가 먹은 것은 밥이 아니라 여자의 정성이었다.
밥을 먹고 서둘러 나오면서 조만간 식사를 사겠다고 약속을 하고 전화 번호를 받아왔다.
퇴근을 하면서 여자에게 전화를 했다.
출근 준비를 한다고 했다.
아이러니 했다.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하는 여자.
며칠 후 여자와 식사 약속을 하고 만나러 가면서 나는 안개꽃 한 다발을 사다 건넸다.
그때 쓴 시 여기 옮겨 본다.
이럴 때 광수는 무슨 생각했을까?
“당신의 느낌이 안개꽃 같아요”라는 말과 함께
그 사람에게 안개꽃 한 다발을 건넸다.
그 사람은 활짝 웃는 얼굴을 안개꽃 다발에 묻고 냄새를 맡고 난 뒤
“제가 이렇게 복잡하게 생겼나요?”라고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나는 그 사람을 표절하듯 웃었다.
웃으면서 생각했다.
…….
…….
…….
아! 이 사람은 지금 복잡하구나!
식사를 하면서 여자의 손목에 찬 팔찌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한번 차 봐도 되느냐는 나의 말에 여자는 선뜻 팔찌를 풀어줬다.
나는 원래 악세서리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팔찌는 정말 예뻤다.
장난끼가 발동을 했다.
내가 말했다.
“ 야! 이 손목에 있으니 팔찌가 훨씬 더 돋보이네요. 이거 저 주실 거죠?”
“ 그러세요”
여자는 짧게 대답했다.
리어커에서 만원 안팍으로 살 수 있는 팔찌 같았다.
저녁을 먹고 헤어지면서 서로 고맙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마음이 후련했다.
나는 여자에게 밥을 꼭 사 주고 싶었다.
한끼의 식사를 대접해 줌으로써 여자에게 가진 부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다음날 여직원 한명이 내 팔찌를 보며 예쁘다고 말했다.
자기도 사고 싶었다고.
백화점에서 세일 할 때 살려고 했는데 비싸서 못 샀다고.
무슨 소리.
이거 만원 정도 하는 팔찌 아니야?라고 묻는 나를 어이없어 하며 보던
직원 왈 “이거 세일해서 팔십만원 정도 하는 거예요!”
헉, 허걱! 뭐라? 팔십 만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당장 전화를 했다.
미안 하다고.
그렇게 비싼 건지 몰랐다고.
되 돌려 주겠다고.
여자는 말했다.
나에게 주었으니 그 팔찌 임자는 이제 나라고.
더 이상 여자의 팔찌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 팔찌도 더 어울리는 손목에 있어야만 그 가치가 있다며 잘 차고 다니란다.
아이구야! 큰일났군!
부채감에서 벗어나려다 된통 뒤집어 쓴 기분이 들었다.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그 팔찌와 똑 같은 팔찌를 일년 할부로 사서 선물이라며 줬다.
바로 그 팔찌였다.
그렇게 재미난 사연이 있는 팔찌였던 것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정이 드는 물건들이 종종 있다.
마음이 이리 섭섭한 걸 보니 나는 그 팔찌와 그새 정이 들었었나 보다.
도 선생이 가져 간 것이 돈으로 치면 백만원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아주 오랫동안 허 할 것 같다.
그래도 그 도선생! 양심은 있었는지 그냥 가진 않고 나에게 큰 교훈을 선물로 주고 갔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철저하게 문단속을 하고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하는…….
비록 두려움이라는 달갑지 않은 것과 함께 두고 갔지만…….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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