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쓸쓸한 여자.

monomomo 2002. 7. 9. 03:59







쓸쓸한 여자.




S# 1 길(밤)


열명 정도의 가족들, 돌잔치를 끝내고 노래방을 갔다 나오는 길이다.

단란하게 보인다.

같은 형제, 자매라도 뜻 맞는 이들이 있어 자연, 짝을 이루어 걷게 된다.

여자, 노래방의 여운이 남은 듯 노래를 흥얼거린다.


언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구나.

여자; 그렇지 뭐!

언니; 김서방이 여전히 잘 해 주지?

여자; 응!

언니; 일도 잘 풀리는 것 같고. 넌 어때?

여자; 뭐가?

언니; 김서방에 대해서 말이야.

여자; 나랑 상관 없는 일이야! 보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지!

언니; 참나, 이제는 좀…….

여자; <말을 자르며> 됐어! 언니! 아무 말도 하지마!

안 그래도 간신히 참고 살고 있는데 가만 있는 사람 들쑤시지마!

그 사람하고 첨부터 약속하고 한 결혼이야! 애까지 나 줬는데 뭘 더?


아무 말 없이 걷는 둘.

여자,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한숨을 내 쉰 뒤 멍청히 하늘을 보고 터벅터벅 걷는다.



S# 2 여자의 집. 툇마루(밤, 10년 전 회상)


결혼식 전날.

툇마루에 앉은 언니와 여자. 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고 마당 한 켠에 심어진 청포도 알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언니; 여자는 몸 가는 곳에 마음 가는 것이란다. 마음 가는 곳에 몸 가듯이.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여자; 시집도 안간 여자가 뭘 안다고 충고는?

언니; 그렇긴 하다마는 꼭 경험을 해야만 아니? 뭐? 그나저나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니? 어려웠을텐데.

여자; 쉬웠어! 그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 상관 없어! 그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그 사람을 원하듯이 그 남자은 나를 원했고.

같이 살고 싶은 사람하고 못 사는 간절함이 어떤 건지 아니까 살아줘 줄라고…….

그 애절함을 알아서 결혼해 주는 거야.


자매, 길게 한 숨을 내 쉬고 캔맥주를 마신다.



S# 3 레스토랑 (석양-10년 전 회상,춘천 이디오피아)


연인들로 가득찬 레스토랑,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연신 눈물을 닦으며 우는 여자를 달래는 한 테이블.


남자; 잘 해 줄게.


여자, 아랑곳 안고 운다.


남자; 약속 꼭 지킬게. 니가 원했던 것.


여자, 한숨을 내 쉬며 조용히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 본다.

남자, 그 여자에게 시선을 따라 가며 계속 말을 잇는다.


남자; 진짜야! 니가 원 할 때까지 네게 손끝 하나 안 댈게! 믿어줘!

난 너만 있으면 돼! 너만! 바라는 것도 없어. 그냥 같이만 있어줘!

사랑해 달라고도 하지 않을게. 난 사실 그놈이 그 길로 간다고 했을 때 속으로는 기뻤어.

니가 이렇게 아파 할 줄 알았다면 강력하게 말릴 걸 그랬나봐. 지금은 후회가 돼.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걸 그랬다. 미안하다.

아무튼 나랑 결혼해 주는 것, 두고두고 고마워 하면서 잘해 줄게.


남자, 여자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던 그 손수건으로 자신의 눈물도 닦는다.

점점 어두워지는 창 밖, 잔 물결만이 이들의 침묵을 매워 주듯 황혼 빛에 물들어 출렁이고 있다.



S# 4 레스토랑 (석양-10년 전 다른 날 회상,춘천 이디오피아)


연인들로 가득찬 레스토랑,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연신 눈물을 닦으며 우는 여자를 달래는 한 테이블.


남자; 나쁜 놈. 내가 잘해 줄게. 울지마.

여자; 니가 뭔데?

남자; …….

여자; 한 번만 만나게 해줘! 갈 길이 다른 걸 알았으니 잡지도 않을 거야!

남자; 알았어! 니가 원하는 일이라면 한 번 해 볼게!

여자; 걔한테 나란 존재는 뭐였을까? 나란 존재가 뭐였길래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S# 5 여자의 집, 방(밤, 10년 전, 회상)


전화를 받고있는 여자.

울고 있는 여자.


소리(남자); 미안해! 어쩔 수가 없었어.

여자; 어쩔 수가 없었겠지.

내가 화나는 건 니 어쩔 수 없다는 그 어쩔 수 없음이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알어?

소리(남자); 널 만나기 전부터 했던 약속이어서…….

여자; 그럼 나하고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지. 하나만 물어보자? 너한테 그럼 난 뭐였지?

소리(남자); 미안하다. 넌 괜찮은 아이니까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정말 미안하다.

여자; 좋은 사람? 웃겨! 난 너여야만 돼! 꼭 너여야만 된다구! 우리 만나! 만나서 얘기해!

소리;(남자); 결정 난 일이야! 할말도 없고 번복 할 수도 없어! 먼저 끊을게.


끊기는 전화.


여자; (전화기를 든채 혼잣말)널 잊지도 않고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하염없이 우는 여자.



S# 6 여자의 집. 마당(낮, 10년 전, 회상)


여자의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여자, 50대 부부 줄줄이 서있다.

뭔가 심상치 않는 대화가 오고 간 분위기.


부부; 제발 부탁입니다. 어르신! 도와 주세요.

여자의 아버지;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소.

부부; 아들이 다섯이 있는데 주의 종을 만들기로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큰 놈부터 신부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넷째까지 다 장가를 보내고 말았어요.

이제 마지막 남은 막내 하나 믿고 있었는데…….

막내도 어르신 따님 알기 전까지는 주의 종이 되기로 우리와 약속을 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장가를 간다고 하기에, 정말이지 우리부부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입니다.

어르신의 따님과 도망을 가서라도 장가를 가야 한다고 하기에 염치불구하고 왔습니다.

첨에는 빡빡 우기다가 따님의 허락을 받아 오면 그때는, 그때는 그렇게 하겠답니다.


여자의 아버지,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 안돼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부부, 갑자기 여자 앞에 무릎을 꿇는다.


부부; 우리 좀 봐줘요! 이렇게 빌게요. 아가씨가 싫어서 그러는 것 아니라는 것 아가씨도 알잖아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여자; 그럼 저하고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저하고의 약속은요?

부부; 아가씨의 허락을 받아 오면…….

여자; 허락 할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빌게요. 우리를 봐주세요!

우리 그냥 살게 내버려 둬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부부; 미안해요. 그럴 수 없어요. 아가씨가 양보를…….

여자; 우리는 이미 약속했어요.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하시면 아시다시피 도망이라도 가서 살기로 약속했답니다.

그러니 그리 아세요.

부부;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우리 아들은 착한 놈이 거든요!

여자; 그럼 전 뭐예요?

부부; 아가씨는 다른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 줄게요.

여자; 기도 같은 것 필요 없어요. 어차피 우리는 같이 살 거니까!





*5년 전에 들은 얘기다.

그녀가 처녀 적에 연애를 했는데 위와 같은 상황으로 그와 결혼을 못하고 연애하던 그의 친구랑 결혼을 했다.

저렇게 쓸쓸하게 사는 여자도 있다.

여럿이 산다고 해서 쓸쓸하지 안은 게 아니듯 혼자 산다고 해서 더 쓸쓸할 리도 없건만

어제는 무척 쓸쓸했다.

환절기도 아닌데 이리 쓸쓸한 것은 마음이 환절기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한 여름의 가운데서 11월을 느끼며 마음의 한기를 달래 줄 친구나 만났으면…….


*의도적으로 역순으로 서술을 했다.





"너여야만 돼! 꼭 너여야만 된다구!"

"걔한테 나란 존재는 뭐였을까? 나란 존재가 뭐였길래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난 너만 있으면 돼! 너만! 바라는 것도 없어. 그냥 같이만 있어줘! 사랑해 달라고도 하지 않을게."

"같이 살고 싶은 사람하고 못 사는 간절함이 어떤 건지 아니까"

"그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 상관 없어! 그 사람이 아니라면……. "



*여자의 말이 쓸쓸하게 들렸던 건…….


…….

…….

…….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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