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들이 또 비야?라고 말하는 걸 보니 요 며칠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가 이제는 지겨워졌나 보다.
장마철에는 그러려니 하다가도 집안 구석구석이 꾸질꾸질 해지고
게다가 식구들이 마를 새도 없이 매일 벗어 재끼는 빨래나 수건에서 쉰내 비스므레한 냄새가 나면
직업이 주부인 친구들로서는 당연히 지겨울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비가 오는 날이 싫어 본적이 없다.
폭풍으로 인하여 낙과가 심하고 벼 농사를 망쳐서 날마다 쓰러진 벼를 묶어 세우느라 고생을 했어도
이상스레 비를 싫어해 본적이 없다.
비는 늘 내게 명상의 시간을 갖게 해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해 준 아주 좋은 친구였다.
그런 비에 대해 어느날 궁금해서 여기저기를 뒤져 보니 비에 대한 많은 정의들이 있었다.
지금은 잊었지만 몇 미리부터 안개비, 소나기, 가랑비, 이슬비…등등
무심코 넘겼는데 학술적으로 다 명칭이 따로 있었었다.
비는 다 비인줄로만 알았던 나로서는 상당히 경이로운 발견이었다.
각설하고,
어제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도 했지만 굳이 핑계를 대자면 비가 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회사를 안 가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먹거리가 문제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다 그렇듯이
풋고추 송송 썰어 넣고 홍합살 넣어
바삭하게 부침개를 부쳐서 초간장을 찍어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으른 나는 머리 속을 떠다니는 부침개 만들 준비물을 사러 가느냐 아님 참느냐로 한참 고민 하다가
된장국을 끓여 밥을 먹기로 결정을 했다.
사무실에 나가면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이 생긴 것이다.
된장국을 끓이면서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거렸다.
순전히 비 때문이라고.
그래도 미워 할 수는 없고 걍~ 탓만 해 봤다.
썩은 부분 도려내고 남은 양파 썰어 넣고,
시골에서 올라와 처치 곤란한 마늘 대충 썰어넣고,
얼마 전에 선배가 갔다 준 풋고추 썰어 넣으면서,
버섯 몇 개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다 고개를 젖고,
감자 한 톨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젖는다.
적당히 내용물을 포기하고 멸치 몇 마리 넣고 된장국을 끓이는데
간만에 집에서 냄새가 진동을 하니 사람이 사는 집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울컥하고 치미는 게 있었으나 시장이 반찬이라고 부실한 내용물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었다.
참나…비가 올 뿐인데…
나참…된장국 냄새가 날 뿐인데…
그나저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 농산물들이 일조량이 부족하여 걱정이라고 한다.
벌이나 나비가 날라 다녀야 수정이 되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호박이나 다른 채소들도 비 때문에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내심 걱정이 된다.
농삿꾼의 딸은 농촌을 벗어나 농산물을 사 먹고 살아도
싸다고 해서 무작정 좋아 할 수도 없는 어쩔 수 없는 농삿꾼의 딸인 것이다.
하긴 그 태생이 어디 가리?
생전 가야 보지 않던 텔레비전을 보면서 광분을 했던 월드컵 경기가
난데 없이 나를 꿈 속의 꿈에라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애국자로 만들어버렸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순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몰라도
따로 노아의 방주라도 어디다 숨겨 놓은 사람처럼
비가 많이 와서 큰 물이 진다 해도 아직은 비를 싫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데 있다.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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