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영화

면접을 보고 와서.

monomomo 2002. 10. 15. 17:44











다림질한 남방 위에 자켓을 걸치고 집을 나섰을 땐 조금은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슈퍼마켓 가는 일과 가벼운 산책을 제외하고 정확히 보름만에 한 외출이었다.

대문에 덕지덕지 붙은 쌀가게, 야식집, 중국집 등등 광고 전단지가 잔뜩 붙은 걸 뒤로 하고

골목을 내려가자 그래도 가을이라고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살랑거리며 스쳐지나갔다.

밤새 질문이 나옴직한 문제를 미리 만들어 답을 연구하며 연습을 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생각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최소한 100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을 몇 년씩 인솔하며 일을 했건만

겨우 6명 밖에 안 되는 심사위원들 대적하는 것쯤이야라고 마음을 달래보아도

마음 한 켠에선 여전히 초조와 긴장이 풀리지 않은 채 답답하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아직 프로듀서가 도착하지 않았다.

차가 막힌단다.

면접시간에 늦지 않으리란 것은 알고 있지만 왠지 불안했다.

괜히 2층으로 올라가서 작년에 시나리오 지원을 담당했던 직원을 만나 시덥잖은 인사를 하고 담배를 하나 얻어 폈다.

이번까지 3번째 공모를 도전하는 나에게 그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 이거 우리 돈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 아니에요? “

나 역시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 한번 밖에 더 가져 갔어요? 이번에 가져가면 이제 안 할거예요!”

ㅡ사실은 내년에 공모를 준비해 놓은 것이 벌써 있기는 하지만ㅡ

잠시 후에 프로듀서가 오고 우리는 시간이 되어 면접실로 향했다.

면접실은 촬영장 셋트처럼 잘 꾸며져 있었고 6명의 심사위원들이 앉아있었다.

진행요원이 음료수를 나누어 줬다.

나는 음료수를 받기가 무섭게 따서 바로 마셨다.

면접을 시작도 하기 전에 긴장한 것이 바로 보여지는 순간이었다.

프로듀서는 준비해 온 서류를 심사위원에게 나누어 준 뒤 질문이 나올법한 것들을 아주 논리정연 하게 설명을 해 나갔다.

프로듀서의 설명이 끝나자 어찌나 잘했던지 심사위원들이 말하길 더 이상 물어 볼 질문이 없다고 말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내게 왜 하필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택했느냐? 시나리오는 가장 완성도가 있다.

하지만 제작이 가능이 하겠느냐? 등등의 질문을 했다.

충분히 짐작했었던 질문이었기 때문에 어려울 것도 없었건만 벌벌 떨면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 먼저 저는 제가 가장 잘 할 자신이 있는 장르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이제 겨우 마흔 하나이기 때문에 아직은 어려서 벗기는 영화나 두드려 부시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때문에 이런 공신력 있는 기관에 공모를 했습니다. 자동차를 의인화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전문가들과 상의하여 충분히 위험하지 않게 찍을 자신이 있습니다. 모두들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제게는 가장 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곳이 아니고는 뽑아 줄 곳도 없습니다. 그러니 꼭 되야 합니다. 여기 이 주인공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꿈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꿈 얘기이지만 사실은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대충 뭐 이런 식으로 주절거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제 감독 소개서 한번 더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ㅡ감독 소개서는 칼럼 번호 166호(9월 13일자) 화이링~~~이란 제목으로 올린 바 있다.ㅡ

면접장을 나와 급하게 담배를 물었다.

가슴 깊숙이 담배 연기를 들이 마시자 갑자기 밀려오는 공복감이 졸음까지 동반하여

헛헛하고 온몸이 나른한 게 어디론가 밑으로 밑으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 두잔의 맥주를 마시고 푹 잤다.

눈을 떴을 땐 어느새 해가 진 다음이었다.

무엇을 도모한다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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