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쁘게 생각 하지 말고 들어!”
ㅡ저 말로 시작을 하는 것 보면 기분 나쁠 소리를 할 모양이군ㅡ속으로 이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단언 하건대 절대 그 영화 성공 못해!”
피디의 오랜 친구가 피디에게 한 말이다.
ㅡ참나. 기가 막혀서ㅡ.
우린 지금 위로와 격려가 필요 때다.
그래도 용기가 생길까 말까다.
옆에서 듣던 나 발끈해서 되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맘이 좀 편해져요? 아니면 그런 식의 말을 들어야 용기를 얻는 타입인가요?”
“예, 자고로 사람이 아닌 것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치고 성공한 예가 없거든요! 어디 있으면 말해 봐요. 심사위원들이 그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실험정신을 높이 샀을 겁니다”
아하? 스타일이구나! 라고 결정을 내린 후에도, ㅡ그래도 그렇지 꼭 저런 식으로 말을 해야 하나? 그렇담 이 바닥에서 내노라하는 심사위원들이 눈깔이 삐었다는 얘기인가?ㅡ
앙금이 가시지 않아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걸 저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짐작되고 상상 할 수 있는 얘기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도움이 되지 않아요!”
빠르고 단호하게 쏘아 붙였다.
“저는 아군입니다. 적이 아니예요. 다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같은 편이라구요. 작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난, 바로 말을 짤라 버리고 되받았다.
“작품,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했죠? 알고 있는 얘기 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 작품은 결과도 중요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과정의 즐거움 또한 놓치고 싶지 않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모르시겠지만 전 지금껏 말만하면 다 아는 회사에서, 말만하면 다 아는 감독들과, 말 만하면 다 아는 작품들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 즉 보도 듣도 못한 영화사에서, 보도 듣도 못한 내가, 남들이 다 찍기 어려울 텐데라는 우려를 하는 작품으로, 그것도 이나이에 승부수를 걸어 보겠다고 결심했을 땐, 어디서 어떻게 숨어있다 튀어 나올지 모르는 복병들을 왜 생각 안 해 봤겠으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변수들를 파악 해 보지 않고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 하세요? 그렇게 보이나요? 힘들긴 하지만 도전하고 극복해 가며 얻어지는 성취감이 있기에 해 볼만 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를 만나서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으며 나의 계획안에 이런 대사는 아예 없었다.
그러니 그는 확실히 뜻 밖의 복병이었다.
피디는 옆에서 익숙한 그림을 보듯이 의자 등받이에 한껏 등허리를 제끼고 앉아 싱글 거리며 보고만 있다가 던지듯 한마디 했다.
“제 원래 저래요! 너, 천적 만났다, 죽었다. 이제 너”
참참참!!!
난 원래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상한 논리를 펼치며 난해함을 이해시키고자 더 난해한 단어를 사용하여,
무슨적 무슨적 사고에 입각해서 <쩍쩍> 거리며 설명하는 쪼의 말투나,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펼치는 자리들을 싫어한다.
새로워야 되고, 식상함이 드러나지 않아야 되며, 신선해야 되며, 뭘 또 직시 해야 한대나 어쩐대나…….
난, 딱 한가지다.
ㅡ그러니 그 새로운 게 뭐냐고? 그 식상하지 않는 것이 뭐며? 직시는 어떻게 하는 건지? 구체적인 것을 실예를 들어 제시하라 이 말이다. 그리고 신선한 것은 야채나 과일 고를 때 사용하는 단어야 임마ㅡ
너무나 웃겨서 당혹스럽지도 않았다.
ㅡ그래! 너 잘났다! 니 눈엔 내가 빙신으로 보이니?ㅡ
말은 차마 하지 못했지만, 거의 음색이나 목소리 톤이나 논조로 봐서는, 한 것이나 진배 없었다.
거의 숨표도 없는 속도로 쏘아 붙였으니까.
흑백 논리로 느껴질지 모르지만“좋다” 나쁘다” 아니면 ”한다” 안 한다” 또는 “옳다” “그르다” 혹은 “모 아님 도”
그는, 그 후로도 마치 나의 말을 먹어버리기라도 한 듯,
계속 생각해서 해 준다는 말을 노래의 후렴구처럼 섞어가며,
거의 비난에 가까운 논조로 중언부언 하며 이어 나갔다.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가는 자리에선 슬그머니 일어나 도망을 가거나,
아님 딴 생각을 하며 듣지 않고 대꾸를 안거나 하는 내가,
이리 따박따박 반박을 하며 그 자리에 오래 있었던 것은,
그래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으리라 본다.
ㅡ니가 하는 말이 뭔 말인지 다 알기도 하고 또 모르기도 하지만, 니말을 들으며 정리 한 것이 있다면 그래! 그거야! 지리산에 가서 알프스를 그리려고 한다거나, 국밥집에 가서 찌개에 소주 놓고 와인에 치즈 크랙카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딴생각을 하지 말자는 것!ㅡ
그가 한 마지막 한 말.
“난 다른 사람과 달라서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든가 대단하다! 라든가 그런 말은 잘 못해요. 칭찬에 인색한 염세주의자거든요.”
그가 수 많은 예를 들며 말을 이어 갈 때,
저 많은 것을 알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 해서 엄청난 독서를 했을 것이고 생각들을 정리했을 법 한데,
창조적인 재생산을 하는데 쓰임새 있게 쓰여지지 못하고 비판을 위한 도구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은,
인식을 위한 인식에 치중하고 그가 열망했던 것들이 제 자리에 한 번도 서보지 않아서 저러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칭찬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거나 칭찬을 받아보지 않고 살았던 사람일 것이다.
짐작컨데, 아마도!!
*참고로 그는 작가다.
다큐멘터리 작가.
그의 화법이 그런 이유는 픽션 보다는 논픽션 위주의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에 익숙해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다 그러나?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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