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아무나 되나?
짧은 삶이었지만 그간에 살면서 일만했다.
정말이지 지겹도록 일만했다.
만약, 내 꿈이 노는 것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놀고 싶었기 때문에 일을 해야만 했다.
나이가 지식이 되기도 했었고 경험이 재산이 되어 요령과 노하우가 생겨 저절로 되는 일도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어려울 때 함께한 사람들과의 호흡이 맞거나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이해하고 넘어가든가.
적어도 그랬다.
기능적인 일에 관한 한.
그러나, 감독은 달랐다.
막말로 기능적인 일에 관한 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감독은.
감독은.
감독은.
하여간 그렇지가 않다.
온 정신을 다 쏟아도 집중이 안 되고 집중이 안 되면 일이 안 되고 일이 안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엄청난 일이다.
작품만 연출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미루어 짐작하여 익히 예견하고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모든 상황마저 연출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직접 부딪히고 보니
예상했던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더구나, 지금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정신무장으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6회차 촬영을 마치고 그간에 잘못 된 것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온몸이 땡기고 장단지가 뻐근 한 것이 몰매를 맞은 것처럼 천근만근이어서 일어나 걷는데 한 발짝 걷기도 힘이 든다.
돈은 없지 할 일은 한 가득이지 경험 많은 스텝들끼리 해도 될까 말까 하는 어려운 작품을 하자 하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절대 인력이 부족하고 절대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 날 미치게 만든다.
더 미치게 하는 것은 모든 상황을 다 이해 하기 때문에 말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다 못 마땅했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좋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난 맘에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 해 봤다.
답은 하나였다.
난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니까 뜻대로 안 된 것만 보고
보는 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잘 된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모르겠다.
뭐가 뭔지.
하여간.
온통 아수라장이다.
수족이 짤린 상태에서…. 몸뚱아리만 가지고, 게다가 그 몸뚱아리마저 성치 않은 상태로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더구나 여느 작품보다 더 많이 제약을 받아야 하고 무거운 책임감이 날 짓누르고 있는 상태에서 끌려가든, 끌어가든 마무리야 하겠지만…
어쨌던,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다는 것이 워디여? 라는 자위를 하며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최상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작품에 임하는 수 밖에 없다.
왜 나는 잘 할 수 있는 일을 두고 버거운 이 일을 한답시고 이십 년 가까이 이 바닥에서 버티고 있었는지.
그 꿈을 이루는 싯점에서 왜 이리도 힘겨운 갈등을 하는지
무엇보다도 이 일을 선택해서 이런 상황에 스스로 처하게 만든 내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난다.
맘이나 독하던지, 아니면 포기를 하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자신이 너무나 싫어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애꿎은 일기 형식의 글을 빌어 여기 올리는 것 또한 더 싫다.
도대체 그 동안 난 무엇을 꿈꾸며 감독이 되기를 갈망했는지.
나조차도 믿을 수가 없다.
내 자신을 믿을 수 없는데 뭘 믿었다고 타인의 언행에 대해 섭섭해 하겠는가?
하여간,
감독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난 이 작품에 대해 고마워 하며 열심히 하루하루가 가기를 바랄 뿐이다.
Duel In Busan 영화제작현장일기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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