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진 상황인데도
되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암울했던 시기를 함께한 동지로서 격려하고 위로하고 갈구고 다독이며 오랜 시간을 같이했다.
힘들고 어려웠던 무용담들을 나누며 우리는 모두 10년 전 조감독하던 시절로 돌아가 벌거벗은채로 이야기하고 떠들며 술을 마셨다.
대한극장 뒷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조협 사무실에서 때로는 충무로 어느 한적한 술집에서 감독의 꿈을 키우던 우리들.
그들 중엔 500만을 넘긴 감독도 있었고 왕창 깨진 감독도 있었고 데뷔 준비하는 감독도 있었고 아예 감독의 꿈을 접은이도 있었다.
깡패같은 세월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단지 덧없음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영화와 인생에 대해 그토록 철딱서니 없이 떠들어 대던 우리들에게 제법 어른스럽게 구는 법도 가르쳐 줬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이 우리를 잠시 또 숙연하게 만들었다.
10년전 우리가 호주머니 털어서 깡소주를 마실때는
최소한.
적어도.
사람이었을 때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하물며.
모든 상황과 조건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
......
......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벌써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버지이고 어머니임과 동시에 현실을 살아내야만 하는 커다란 임무와 특명을 받은 이들이므로.
우리들은 편의점 옆에다 박스를 깔고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소리를 질렀다.
"요즘 애들은 정말 일 잘 해!!"라고.
*그리고 기억에 남는 말 하나 더.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가 과연 이런 영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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