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납니다.
그 동안 마음을 비우고자 아픔을 빙자하여 은둔과 칩거를 하며 오로지 음악만 들었지요.
길고 지난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누구의 것보다 더 크거나 특별하달 것도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단지 나의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듬어 끓어 안고 좀 길게 헤매고 있었습니다.
손톱 밑에 낀 배접처럼 내 것이기 때문에 더 크고 더 아프게 느꼈을 겁니다.
살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니 살고 싶어서 길을 떠납니다.
내년에 옵니다.(9월 19일에 떠납니다)
여행지에서 가끔 들리지요.
인터넷이 되는 곳에 있다면 이따금 들러서 지금처럼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떠들다 가겠습니다.
건강하게 다녀 올게요.
다녀와선 지금보단 훨씬 씩씩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며
예전처럼 씩씩한 잡문 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꼭 이곳의 회원이 아니라도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늘 지켜 보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 외출을 했다.
건물 한켠에 자리한 작은 화단 앞을 지나다 봉숭아를 보았다.
꽃잎 하나를 따서 엄지와 검지로 문질러 보았다.
손가락에 봉숭아 핏물이 들었다.
갑자기.
어릴적에 엄마가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던 기억이
봉숭아 핏물처럼 붉은 색으로 선연히 떠 올랐다.
백반 가루에 아리던 그 아릿한 아픔까지 되살아 나는 듯했다.
나는 그 꽃잎의 주검을 기리는(?) 맘으로
꽃잎을 손까락으로 조물 거려서 왼쪽 새끼 손가락 손톱 위에 올려 놓았다.
그렇게 한 동안 손톱을 우대고 있었다.
마치 제를 지내는 한 의식행사처럼 사뭇 경건한 마음으로.
얼마나 지났을까?
꽃잎을 벗기자 그 꽃 색깔 그대로 손톱에 물이 들어 있었다.
그랬다.
죽어 없어진 꽃잎 하나도 어딘가 자기의 흔적을 남길 기회가 주어지면
타자를 통해서도 이리 흔적을 남기는 법이거늘......
순간 가슴이 찡해졌다.
손톱 길이 13밀리.
돌아오는 날이면 그 꽃물 든 손톱을 밀어내고 자라난 손톱의 길이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보다 더 웃자라 오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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