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는지
좀 나아지기 했지만 열이 쉬 가시질 않는다.
난 찜질을 하기 위해 언니랑 싸우나로 향했다.
언니는 성당으로 봉사를 가는 길에 날 싸우나에 떨어뜨려 주고 오다가 다시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이 쉬는 날이란다.
난 할 수없이 언니네 성당으로 따라갔다.
아주머니들이 몇몇 오셔서 벌써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오늘, 오레오라는 학생 봉사단 모임이 있는 날이라서
성당에서 음식을 준비 해 주는 것이란다.
70여명이 모인다니 참 큰 학생 봉사 모임이다.
그것도 한국 학생들로만 구성된.
나도 졸지에 거기서 야채 전을 부치는 담당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여느 잔치집에서 준비한 음식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음식들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기타와 올겐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연습을 하고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한복을 입고 와서는 옷 고름을 접어 달라고 하기도 했다.
20여까지의 음식들을 하나씩 뷔페식으로 배열을 해 놓은 뒤 나의 일은 끝이 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수녀님들과 함께 사시는 양로원엘 들렀다.
저번에 고추를 같이 따러 간 할머님들이 사시는 양로원이다.
그 할머님들은 이틀 뒤에도 고추를 따러 가셨다고 한다.
참참참!! 대단한 할머님들이셨다.
난 하루 따고 이리 고생을 하는데 또 가시다니.
할머님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계셨다.
수녀님과 할머님들이 식사를 하라고 권했다.
낮에 월남 식당에 가서 쌀 국수를 먹고
또 야채 전을 부치면서 몇개 줏어 먹어서인지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쩔 수없이 거절하지 못하고 밥을 먹었다.
모두 4명의 할머님과 2명의 수녀님이 사시는데 모두들 정정했다.
90살이 넘은 할머님은 특히 정정했다.
밝고, 편안해 보였다.
집을 둘러 봤더니 시설 또한 좋았다.
식사를 마친 할머님들은 모두 텔레비젼을 보기 위해 거실로 가셨다.
텔레비젼을 열렬히 보는 팬들이셨다.
하긴 이른 저녁을 드시고 난 후 잠 들기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 밖에.
정원 잔듸밭에는 고추가 빨갛게 널려 있었다.
할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 오는 길에 언니가 말해 줬다.
작년에도 고추를 따서 말려서 수재의연금으로 한국으로 보냈다고.
이번에는 고추를 따서 말려서 가루를 낸 다음 팔아서
집을 늘리는데 보탠다고 한다.
미국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려면 최소한 7명의 할머님들이 계셔야 하는데
이 양로원은 원래 개인이 시작하여 한 분, 두 분씩 모여 이제 겨우 네명이니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친정 어머니와 시 어머니 두분으로 시작하였다고 함-
그러다 개인이 운영하기엔 너무 벅차서 돈을 벌어 대다가 결국 수녀님들께 기증을 했다고 한다.
할머님들이 묶는 방이 4개니 방이 3개는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그나마 정부 보조금을 받아 조금 더 여유 있는 운영이 될것 같아 할머님들은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든 고추를 사다 말려서 빻아서 파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난 또 맘이 약해져서
이번주 토요일에 봉사하는 맘으로 고추를 한 번 더 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리질 못했다.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그동안 고생 한 걸 생각하면.그리고 아직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도 안 된 상태고.
어쨌거나, 학생 봉사회도 그렇고, 양로원 할머님들도 그렇고, 맘이 훈훈 해지면서도 짠한 구석이 맘 한 구석에 앙금처럼 엷게 가라 앉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몸이 완벽하게 회복이 되어야 뭔 봉사를 해 드리던지 말던지 할텐데.
참, 난 여기가 덴버인 줄 알았는데 오로라란다.
그러니까...그 동안 나는 수원에 살면서 안양에 사는 줄 잘못 알고 있었다.
* 잘 쓰는 글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난히 문장이 잘 이어지지 않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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