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s Company - Crippled mind 이 한 곡만을 윈엠에 올리고 이 글을 시작한다.
오전 10시쯤 되자 친구가 와서 날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10년 전, 뉴욕에 출장 차 왔을 때 본 이후 처음 보는 친구는 이제 제법 중년 아줌마 티가 났다.
친구는 내가 묶고 있는 플러싱 모텔에서 차로 1시간 가량 달려야 하는 뉴욕의 요세미티라는 마을에 사는데 서울의 성북동처럼 아주 상류층은 아니지만 중 상류 이상의 부자 마을에 살고 있었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원이 넓은 각기 다른 집들이 나무가 우거진 사이사이 마다 아담하게 자리 잡은 아주 예쁜 마을이었다.
집으로 들어 가자 강아지 새끼 한 마리가 낮선 이방인을 멍멍 짖으며 호되게 맞이해 주었다.
성질 같아서는 저걸 발길로 뻥하고 차버리는 건 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조심스레 소파에 가서 앉았다.
친구는 오자 마자 감자를 찾아 든 채 나에게 물었다.
“배 고프지? 나도 너랑 같이 먹으려고 아직 식사 전이야”
어제 기내에서 점심을 먹은 이후로 먹은 게 없어서인지 엄청 배가 고팠다.
친구는 뭔가를 만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두 개의 접시를 들고 식탁에 놓으며 친구는 배 고플 텐데 어서 와서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내가 상상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난 친구 손에 들려진 감자를 보고 된장국을 상상했는데……
세상에나 그 감자는 찌게에 넣어질 것이 아닌 구이 용이었던 것이다.
접시엔 반으로 쪼개진 감자 구이와 식빵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참 넌 버터를 싫어했지? 자, 소금. 커피 어떻게 마시더라?”
친구는 소금 병을 내 앞으로 밀어 놓고 커피를 따르며 말했다.
암담했다.
그 친구 대학교 3학년 때 우리가 만났으니 올해로 딱 20년째 되는 해다.
하긴 그때도 그 친구는 내 생에 한번도 먹고 싶어 본 적이 없는 파스타나 스파게티를 좋아했는데 그 동안 친구는 나의 식성을 완벽하게 잊어버린 것 같다.
“난 아무 것도 안 타”
친구는 내게 커피 잔을 밀어 주고는 자신의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잔뜩 넣었다.
“첫 애를 가졌을 때 감자만 먹었어. 밥 냄새를 못 맡았거든.”
“응, 그랬어?”
감자를 천천히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에 와 살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였다.
10년 전엔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었다.
“혹시 김치있냐?”
“그러엄! 여기다 김치 먹게?”
“응, 좀 주라!”
“너도 참,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냐? 흰 머리 난 것만 빼고 헤어 스타일도 똑 같고…… 여전해……여전해. 얼굴도, 살집도, 옷 입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친구가 김치를 꺼내러 간 사이 내 몫으로 할당된 접시에 놓여진 한 장의 토스트를 친구의 접시에 옮겨다 놓으며 ㅡ??? 아니 난 단지 김치를 달라고 한 것뿐인데. 그리고 변한 게 없다니? 그렇다면 내가 이십 대 때 벌써 이렇게 나이 들어 보였단 말인가? 참참참!!!ㅡ 속으로 생각했다.
식사(?)를 끝내고 친구랑 쇼핑을 갔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이 자라서 아들과 딸을 데리고 아룰렛으로 운동복을 사러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서울에서 올 때 짐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게 있으면 사려고 거의 아무것도 준비를 해 오지 않았다.
헌데 간밤에 자는데 어찌나 덥든지(땀을 뻘뻘 흘리고 잤는데 아침에 보니 에어컨이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집이 아니라서 그런지 습관대로 으뜸 가리개만 하고 자기엔 뭔가가 꺼림직해서 안 그래도 반바지와 티셔츠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쇼핑(회색 티셔츠와 감색 반바지를 샀다. 지금 입고 있는데 무지 편하다)을 마치고 집에 와서 친구가 별미라고 해 주는 메밀 국수와 아이들 별미로 끓여 준다는 라면을 먹었다.(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친구의 아들과 딸은 김치 라면을 끓여 달라고 거의 애원에 가깝게 엄마에게 호소했다. 라면은 거의 안 끓여 준다고 한다.)
참참참!!!
나의 라면 행렬은 길게도 이어지는군.
미국 와서 이틀 동안 감자 이후 먹는 첫 식사가 또 라면이 될 줄이야 상상 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그들에겐 별미라 하니.
그들의 별미가 나를,
나의 주식에서 또 못 헤어나게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친구랑 드라이브를 갔다.
“여기가 대서양이란다”
친구가 뭐라고 뭐라고 설명을 해 줬는데 지명은 다 까 먹고 존슨스 비치(10년전에 와서 촬영을 한 곳이라서 장소도 이름도 기억이 났다)를 지나 무슨 파크웨이를 달렸는데 좋았다.
길 양 옆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성하게 있었고 대서양을 끼고 드문드문 박힌 집들과 쭉 뻗은 고속도로가 맘을 평온하게 해 줬다.
해질녘이었다.
그 길을 달리며 난 기도했다.
내 안에 평화가 들 끓기를……내 안에 평화가 가득 차 오르기를……
그리고.
숙소.
8시가 되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6시, 어쩐지 한국 시간으로 지금이 딱 잘 시간이었다.
친구랑 한 두어 시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돌아갔다.
난 곧바로 옷을 갈아 입은 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그리고
노래를 걸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은 여기 시간으로 새벽 2시.
10시에 잠을 잤으니 한국 시간으로 아침 8시에 잠을 자서 12시에 깬 셈이다.
창 밖은 뉴욕.
난 내 방에서 하던 짓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며 책상에 앉아있다.
여전히 Blues Company - Crippled mind 한 곡만 내 맘 속을 헤집고 다니며 흐르고 있다.
그래도 창 밖은 뉴욕.
*이 글을 쓰며 배가 고파 선물로 줄려고 가져간 오징어 한 마리를 다 뜯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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