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시간을 죽여야했다.
맘이 정리 될 때까지.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시간만이 해결책이란 걸 안 이상
지금이 아닌 시간으로 가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넋 놓고 막연하게 기다릴 수만는 없었다.
방법은 그 시간을 어떻게 죽이냐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마흔 두살이란 나이가 기억에서 조차 사라져버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으나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에 내가 맞았던 절망은 그 동안 내게 있었던
지나놓고 보면 짧거나 혹은 별거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던 그런 절망과는 너무 다르다.
엄마의 죽음과 산으로 숨어버린 연인이 내게 가장 크게 느껴졌던 절망적인 순간이었다면
이번이 그 세번째 맞는 절망의 순간이었다.
내게 있어 영화는
잠을 못 자고 밥을 굶어가면서도 촬영현장에만 있으면 가슴이 울렁 거렸고
당장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지만
그것이 단지 아득함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늘 설레이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난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20년 가까이 먹고 살았다는 것.
그것도 너무 사랑하는 일을.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난 이제 그 영화라는 오랜 연인과 정을 떼는 작업을 하나하나 잘 진행 해야 한다.
나와 같이 일을 하다가 지금은 안하거나 잠시 쉬고 있는 두 명의 후배를 만나는 일이 이번 여행에 포함되어져 있다.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보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한국으로 돌아 갈 즈음 난 마흔 두살의 끄트머리에 서 있을 것이다.
나, 생을 호락호락하게 대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생은 내게 너무 호의적이지 않다.
삶을 보다 농도 짙게 받아 들이며 살고자 했던 것이
생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함이 아닌
그저 단순한 호기거나 치기어린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면
이제 버려야 할 때인가보다.
앞으로는 이렇게 무(無)로 사라지게 하는 시간들을 또 만드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내 생에 다시 못 올 시간 죽이는 작업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존재하지 않을 시간 속으로의 여행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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