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좀 이른 시간인 열 시에 잠자리에 누었다.
그 동안은 열 시에 잠들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난 요즘 엄청 많이 잔다.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일어난 시간은 아침 일곱 시.
가볍게 씻고 가방을 싸고 아침을 먹고 친구랑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서 집을 나섰다.
기차를 타기 위해 산호세 역으로 향했다.
타켓팅을 하고 친구는 먼저 갔다.
여기까지도 왔는데 까짓 엘에이 못 가겠느냐며 친구는 걱정 반 믿음 반하며 떠났다.
역에서 기다리는 동안 역에 있는 상점들을 구경하였다.
그러자 시간이 되어 뭐라고 설명을 해 주는 긴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난 그 긴 말 중에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내가 타야 할 11번 기차를 탈 사람은 지금 프렛폼으로 나가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것만 알아 들으면 되지 뭐.
덴버에서 올 때도 그랬다.
비행기가 떠나야 할 시간에 뜨지 않는 것이었다.
길고 긴 안내 방송이 나오긴 했지만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나는 계속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안내방송을 귀담아 들으려 했지만 제대로 들을 수가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 이유야 어찌 되었건 30분이 딜레이 된다는 말을 알아듣고 친구에게 전화를 해 줘서 친구가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12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좌석을 배정 받고 최대한 편한 포즈를 취하고 자리에 앉았다.
기차는 무척 편한 편에 속했다.
좌석은 거의 싱글 침대 크기 정도 되었다.
일단 도시를 빠져 나가기를 기다리며 난 또 잠시 눈을 부쳤다.
눈을 뜨자 기차는 드넓은 벌판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띠엄띠엄 있는 농가와 넓은 밭들 사이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가끔씩 기관사가 방송을 통해 주변 경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데 내가 탄 기관사는 참 유머러스한 사람인 것 같았다.
“저기 산 아래 보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답죠? 우리 아버지의 고향이라서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멋진 분이셨는데 아마 이렇게 아름다운 고장에서 나서 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저는 멋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전 엘에이에서 태어났거든요.” 그 외에도 잘은 못 알아 듣겠지만 하여간 무지 웃기는 이야기를 많이 방송 해 줬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둥산(아마도 사막인 듯)을 한 두어 시간 또 달렸다.
나는 좌석에서 일어나 카페로 갔다.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코로나 맥주를 한 병 사 들고 와서 홀짝 홀짝 마시고 있는데 와~~ 바다가 보이는 1번 도로로 접어 들었는지 기차는 끝도 갓도 없는 바다를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순간 몹시 안타까웠다.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이유는 이렇게 멋진 광경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사람끼리는 얼굴을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를 함께 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좋았던 기억 하나가 되살아 나며 내 손을 힘 주어 꼭 쥔 채 놓지 않았던 손 하나의 감촉이 느껴졌다.
기차 안에서 내내 생각 나는 한 사람.
보고 싶다.
산타바바라 해변이었다.
몇 개의 역에서 쉬는 시간마다 담배 필 사람은 나가서 피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난 그 때마다 너무나 충실히 나와서 담배를 피웠다.
캬~~정말 그렇게 담배를 맛나게 피다니.
친구가 삶아 준 계란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팠다.
뭔가를 먹어 보려 카페의 진열장을 이리 훓러보고 저리 훓어봐도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은 없었다.
맥주를 한 병 더 마셨다.
샤무엘 아담스라고 아는 후배가 쓴 소설 책에 멋지게 등장하곤 했다.
사막이 아닐까 느껴질 만큼 민둥산이 두 시간 이상 계속되고 바다를 끼고 달리는 시간도 두 시간 이상 계속 되었다.
자다 깨서 맥주 한 병 마시고 자다 깨서 맥주 한 병 마시고 하다 보니 어느새 엘에이에 도착했다.
도착 직전 어떤 손님이 말을 붙여왔다.
내가 맥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뭔가를 끄적거리는 것을 쭉 지켜 봤다고 했다.
나이는 한 50살쯤 돼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사담 후세인을 아느냐며 이라크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아들을 소개 시켜 주었다.
나이는 24살이며 카 디자이너란다.
녀석은 3D와 시뮬레이션으로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직업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나더러 직업이 뭐냐고 해서 난 그냥 작가라고 했다.
무엇을 쓰느냔다.
하하하.
난 속으로 생각했다. 지가 알게 뭐람?
시나리오& 시& 소설이라고 말하고 내가 쓰고 싶은 장르의 글들을 마치 지금 이미 작가인 냥 말을 했다.
뭐라고 그러는데 나쁜 반응은 아닌 듯 했다.
그 이라크인 부자는 시에틀에서부터 샌디에고까지 가는데 2박 3일째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란다.
으~~~ 난 왜 비행기를 안타고 기나긴 시간을 기차를 타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비행기를 싫어 한다고(고공 공포증이 있단다) 그리고 기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역시 이라크인이나 일본인 등등 오리지날 미국인만 아니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이야기가 가능했다.
어차피 지들도 말이 안되고 나도 말이 안되니까 그런가 보다.
엘에이 역에 내려 나는 언니가 사는 오렌지 카운티에 가기 위해서 풀러튠 역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 타야 했다.
마침 그 부자도 샌디애고로 가는 기차를 갈아 타야하는데 나도 그들과 같은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은 한 시간 삼십 분 가량이었다.
나는 일단 그들을 따라 갈아 타는 곳을 가야 하기 때문에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그들은 배가 몹시 고프다며 엘에이역을 나와서 역을 나와서 줄줄이 늘어선 식당가로 갔다.
나는 일단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들을 따라 갔다.
이라크인이긴 했지만 설마 아들과 아버지인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역시 엄청 배가 고팠기 때문이기도 했다.
식당가는 마치 남대문 시장 어느 한 골목처럼 길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거기서 그들이 선 곳은 어느 멕시칸 식당 앞이었다.
아들은 내게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었다.
양파가 들어가고 고기가 들어가고 매운 소스가 들어 간다고 그리고 기타등등 다른 음식도 설명해 줬다.
난 그들이 시키는 음식을 같이 시켰다.
헌데, 그 음식을 사서 먹는 것이 아니었다.
기차 안에 가서 먹는다는 것이었다.
난 그 뜨거운 이상한 음식을 들고 다시 그들을 따라 엘에이역으로 왔다.
역 뒷편에 앉아 담배를 피는 동안 그들이 갑자기 티켓을 찾는다며 자기네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지던 그들은 티켓을 못 찾았는지 부자간에 말 싸움까지 하다가 급기야는 가방을 아주 홀라당 뒤집으며 대대적으로 티켓 찾기를 했다.
순간 겁이 났다.
앗! 이거 혹시 수작이 아니었나?
난 뭘 믿고 이들을 따라 다녔지?
아이고 어쩌나? 이거 이러다 국제미아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러는 순간 그 와중에 어떤 예쁘장하게 생긴 미국 아이가 와서 그 이라크인에게 담배를 한가치 달라고 했다.
이라크 아저씨는 가방을 뒤지다 말고 담배를 줬다.
돈을 주겠다는 미국인에게 아저씨는 괜찮다고 말 했다.
그러자 미국인이 불도 좀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불을 붙여 주며 불은 돈을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농담을 하는 이라크 아저씨가 참 대단했다.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아들이 티켓을 찾고 시간이 되어 우리는 기차를 타러 갔다.
난 첫 번째 멈추는 역에서 내리면 되었다.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미리 인사를 나눴다.
잠시나마 그들을 의심 한 것이 미안 하긴 했지만 이젠 무턱대고 따라 다니지 않기로 했다.
바보.
난 왜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늘 믿어버릴까?
바보이기 때문이다.
풀러튠 역에서 내리자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사히 온 것이다.
무지하게 더운 날씨였다.
일단 집으로 가서 밥부터 먹었다.
그 이상한 멕시코 음식을 언니에게 주며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짧게 설명 해줬다.
언니와 형부는 웃고 말았지만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12시간을 기차를 타서인지 엄청 피곤하다.
자야겠다.
덴버는 낙엽이 지더니 여기는 30도라니…참참참.
미국이란 나라 크긴 더럽게 큰 것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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