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앞에 멋지게 나타난 한 낯선 사내가 있었다.
그가 자기를 따라가자고 해서 첨 본 사내를 아무 의심 없이 이끌려 따라가 산 게 15년이었다.
그는 날 몹시 사랑했으며 나 역시 그를 몹시 따랐다.
내 생에 최초로 사랑했던 사내.
아버지!
내 나이 다섯 살 때였다.
그 전 기억이 더 있다면 두 살 때쯤인가 절대 가면 안 된다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아버지 집 앞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냥 되돌아 오곤 하던 기억.
아버지 집은 도르레가 없는 미닫이 문이었는데 어린 내가 열기엔 도저히 힘에 부쳐 도저히 열 수 없는 무거운 나무로 된 문이었다.
늘 문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다 누군가 나타나 문을 열어 주기만을 기다리다 운이 좋으면 한 번씩 아버지를 보고 왔던 기억.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두 명의 아들을 잃고 연이은 사업실패로 인해 이른바 노이로제라고 불리워지는 홧병에 합병증까지 겹친 환자였다.
아버지의 방은 회백색 벽지에 청색 띠 벽지가 둘러져 있었고 콩기름 먹인 장판지가 깔려있었다.
벽 쪽으로 바짝 붙여 방 한 켠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다 내 인기척을 느끼면 힘겹게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들어 오라고 손짓 하시곤 했다.
난 한번도 그 방엘 들어 간 기억이 없다.
늘 비린내가 진동 하던 그 방.
그가 각혈하던 피비린내였는지,
장판지에서 나던 콩기름 비린내였는지,
아니면 허공을 향해 오라고 손짓하던 그 가늘고 하얀 손에서 떨어진 살 비늘 비린내였는지,
날 선뜻 그 방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던 냄새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것은 엄마 품에서 나던 생선 비린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냄새였다.
훗날 아버님은 그 시절 나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곤 했다.
들어 오라고 손짓을 하면 그냥 한번 웃어 주고 되돌아 가던 얼굴이 가고 나서도 계속 떠 올랐노라고.
그 시절 아버지와 난 공모자였다.
내가 다녀 간걸 비밀로 해 주고 엄마한텐 안 갔다고 한 거짓말을 묵인 해 줬다.
아버지한테 가면 안 된다고 늘 당부하던 엄마에게 안 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엄마는 내가 아버지한테 다니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안 그러면 그렇게 매번 되묻지 않았을 테니까.
아버님 돌아 가신지 어느새 9년.
어찌어찌 기일에 못 가고 말았다.
오늘은 왠지 유별나게 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이다.
요즘 들어 내 안으로 내 안으로 자꾸만 기어들어 간다.
성장이 정지 된 그 어느 싯점으로.
아무래도 병인 것 같다.
ㅡ어떤 칼럼에서ㅡ <간단히 말하자면, "유아적 반항 증후군"이라고 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것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반항심이라 생각하면 된답니다.
살아온 충격들을 거부하고자 하는 좋게 말하면 순수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극단적인 폐쇄성이라고 한답니다.
발단은 거기서부터 시작됐고 상승적인 연결은 욕구불만으로 인한 피해망상과 실현되었으면 하는 강한 희망으로 생기는 과대망상의 증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정신병자죠.
이 현상은 자제력이 생기면서도 현실에 대한 반항의 기미가 나타나면 급격히 악화되는 현상도 나온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제력이 생기면 그만큼의 반항심리가 동시에 작용하고 마침내 뮌히 하우젠 증후군(Muinch Hausen Syndrome or by Proxy)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그건 꾀병이 생기기도 한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끝없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이중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전에는 단순한 편집증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더니, 자신이 무슨 일이던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그 일이 자신에게 자긍심을 준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뮌히하우젠 증후군은 독일의 귀족의 이름을 따서 지은 병명인데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 속의 일을 현실의 일로 만들어 버리는 병적인 거짓말을 하는 증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러나 지금 몸에 나타난 병들은 현실이라고 반문하였는데.............
매우 약하게 있는 부분이고 그래서 지금은 꾀병의 수준으로 인정되고 심하게 발전되면 병적인 위선자가 되어 정말 생각하고 있는 병으로 모짜르트처럼 생을 마칠 수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정말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하였더니, 상상임신에 대한 것과 동일하게 알고 있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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