뜽금없이 내용장이 송달 되었다.
기억에도 없는 고리고리짝 할아버지 아부지 시절의 땅 어쩌고 저쩌고를 팔고 샀는데
상속 뭐 어쩌고 저쩌고 포기 각서인지 이의 제기인지 할 기회를 준다나 어쩐다나.
머슴을 셋씩이나 둘 정도로 갑부였던 할아부지가 아들들을 줄줄이 낳았으니
땅이 나뉘고 어쩌고 하여 자손들이야 다 그만그만하게 살았는데
어째서 그것이 나한테까지 연이 닿아 무지하게 어려운 법적 용어가 섞인 내용장을 받고 고민을 하게 하냔 말이다.
내 일찌기 사전보다 더 재미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알만한 단어는 다 안다고 건방을 떠는 관계로다가 어렵고 골 아픈 단어들을 피해가며 나불거리는데
도시 저 법률용어들을 이해하는데는 단어를 아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왜 국가는 세종대왕이 만든 좋은 한글을 두고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 담긴 서류들을 이 어여쁜 백성에게 보내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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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등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내가 이의를 제기하면 그 땅이 내 땅이 되나?
그런 건 아니지 않는가?
민족 주의에 관한한 나처럼 게으른 자에게도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보도 듣도 못 한 땅
관심도 없는 땅
지금 와서 나더러 뭘 어쩌라는 것인지.
몇 해전 포기 각서를 썼다.
상속 포기 각서.
작은 아버님이 말리고 두루두루 말렸지만
난 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어머님이
본인이 낳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는데 내가 뭔 할 말이 있었겠는가?
그러저러한 끈으로
혈족이라는 이유로
연루되고 싶지 않았었으니까.
거기서 끝나는지 알았는데
또 있었다.
어디로든 직방으로는 통하지 않는 내 출생 성분상
난 개 밥의 도토리인가부다.
이쪽에서도 포기 해라
저쪽에서도 포기해라.
아니 포기하기 이전부터 내 앞으로 올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참 다행인 것은
내가 그닥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영 없는 것이 아니니 이리 쓸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런 것에 연연해하고 살았다면
난 벌써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와서 뭔 포기?
어쨌든 왜 나한테만 다 포기 하라는지.
것도 힘들다.
포기하기 이전에 가진 적도 없는데...
속없는 나는 쌔빠지게 돈 벌어서 집을 지어 드렸는데
그 집이 만일 내가 지어드린 집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 조차도 팔자고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어머니
제 속을 그리 갉아대면
당신 속은 좀 편하신가요?
그렇다면 제가 달게 받아야겠지만
다음 주에 교회가서 회계 할 일은
더 이상 만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참고로 어머님 연세 90이다.
나이가 90이 되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나보다.
무섭다.
아부지.
언제나 그랬듯이
당신이 몹시도 그리운 밤입니다.
당신이 살아 계셨어도 제가 오늘 날 이런 내용장을 받았었을까요?
보고싶군요.
쓰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