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쯤 되었을까?
침착하게 상주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보는이로 하여금 더 안쓰럽게 만들더니
아내를 잃은 녀석의 허한 마음을 덮혀 줄 온기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 덮어 준 몸 반토막쯤 가린 검은 파카 한장에 의존한 체
부인의 영정 밑에서 기억자로 꼬구라져 자고 있었다.
그래, 넌 살아 있구나.
산 사람은 잠도 자고 그래야지.
아픔이 제아무리 크다해도
산 사람의 생리적인 리듬까지 제어하긴 어렵지.
얼굴을 슬쩍 만져 줬다.
누군들 두건이 어울릴까만
팔에 두른 완장같은 상장과 녀석의 대머리를 가린 두건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6시쯤 되자 녀석이 일어나 우리 자리에 합석을 했다.
권하는 술 한잔을 받아 마신 녀석은
그제서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부활절 고난주간이라 새벽기도를 갔다가
예배가 끝나도 일어나지 않는 친구를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불렀을 때
친구는 옆으로 픽 쓰러졌다고 한다.
이미 죽어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이 딱 두패로 갈렸다.
사람을 살려내도 시원찮을 그 교회를 불질러버리자는 패거리와
그래도 참 다행이야 지 좋아하는 교회서 죽었으니라는 패거리.
녀석과 친구는 중학교 동창이다.
녀석은 줄곧 반장과 회장을 하던 우수한 모범생이었고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늘 당당했던 녀석과 환하게 웃으며 착하게 산 친구였기 때문에
그 둘의 결혼을 모두모두 축하해 줬다.
다른 고장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우리 촌년놈들은 공부께나 했던 놈은 대부분 공무원 아니면 선생질을 한다.
해서 모두 다 고만고만하게 산다.
이제 조금 숨 돌리고 살 나이들이다.
녀석도 선생이다.
결혼 생활 17년동안 줄곧 고3 담임만 맡아서 친구들한테 핀잔을 듣기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퇴근 시간이 빨라야 10시 11시
회식이라도 있는 날은 2시가 넘어 들어 온단다.
주말이면 RCY 활동이랑 보이스카웃을 또 지휘하느라고 밖에서 바쁘단다.
우리들은 부인을 질책하면서 네가 바가지를 긁지 않으니 그렇다고 뭐라고 하곤 했다.
친구는 말하기를
뻔히 아는데, 돈을 벌어다 주지 않은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계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고3들과 날마다 시달리고 있다는 거 아는데
늦게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는 모습에서 피곤한 기색을 보면
외려 안쓰럽고 아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해서 약속을 했단다.
내년부턴 고3 맡지 않기로.
엊그제 일요일에 만나기로한 친구도 있었고
내일 모레 일요일에 부부가 함께 동창회에 참석하기로 약속 했단다.
녀석이 울면서 하는 말이
결혼해서 처음으로 함께 동창회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 일주일을 못 참고 갔다면서 울었다.
"내가 가슴이 제일 아픈 건 말이다. 사랑한단 말보다도 더 안 나오던 그 말을 못 해 주고 보낸 것이야. 목젖까지 올라 오는데도 못해 준 말이 여보 힘들지, 수고했어. 이말이었어. 내가 장남이니까 집안 대소사를 치르고 나면 수고한 거 뻔히 아는데 그말을 너무나 해 주고 싶은데 잘 안나오더라구. 그게 젤 가슴이 아퍼"
녀석은 마누라를 잡아 줬어야 할 손 대신 내 손은 꽉 잡고, 나중에는 손가락 끝이 저릴 정도로 꽉 붙잡고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다.
"아침에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살아 날지도몰라 아니야 살아나지 않을 거야 살아날지도 몰라 아니야 살아나지 않을 거야 그 생각만 내내 나더라구. 그 담엔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어. 아무 생각도 안나고 멍하니 그냥 약 먹고 누워서 자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럴 수가 없었어. 난 지금 장례식을 집행해야 할 상주잖아. 마누라 제대로 보내 줘야 하잖아. 남잔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울지도 못했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니까 더 가슴이 아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겠어서. 내가 이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밖으로 나돌 때 얼마나 혼자 외로웠을까 생각하면,,,힘들었을까 생각하면,,,착한 사람이니까 좋은데 갔겠지만,,,갔을 거야,,,봉사도 많이 하고 살았으니까,,,"
이때 뒷통수를 팍 치면서 한 녀석이 내 뱉았다
"새꺄 그러니까 있을 때 잘했어야지"
둘 사이는 좋았다.
서로 너무 믿거라하고 공기 같은 존재처럼 살았다.
나오는 시간이야 정해졌지만 가는 시간은 선후가 없다는 거 알면서도 왠지
아직 중학생인 아들 녀석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싸아하게 아려왔다.
그 친구의 급작스런 죽음은
다른 많은 친구들에게 경종을 울려 줬다.
남편이나 부인에게 잘해 줘야겠다고 새삼 생각하게 하는.
착한 친구는 먼저 가면서도 많은 친구들에게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을 일깨워 주고 갔다.
친구야, 편히 쉬거라.
*
어떤 동창생 녀석이 내 옆으로 와서 한마디 했다.
" 야, 넌 왜 나한테 전화 안 하냐?"
"내가 왜 너한테 전화 해야 하지?"
"잉?"
"그러는 니가 좀 하지 그랬냐?"
"그런가?"
"난 너한테 왜 전화 하지 않냐고 하지 않는데 넌 왜 그래? 니가 하면 되는 걸"
"그러네"
전화하고 싶은 맘 생기는 사람이 그리 흔했다면
내 아직 이러고 살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독한 년, 말 좀 이쁘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참고로 난 엄마 , 아부지 돌아가셨을 때
결근을 해야 하니까 회사에 알리는 걸 제외하고
단 한명의 주변인에게
심지어 느므느므 친한 친구에게 마져도 알리지 않았던 모진 년이었다.
나 아픈 거 알면 아플거란 미련한 배려를 하느라고.
그 덕에 친한 친구가 죽었을 때 나에게만 알리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 걔한텐 말하지 마라. 걔 이 사실 알면 난리 난다. 안 그래도 예민한 애 지금 지 영화 찍느라고 정신 없을 텐데" 그랬단다.
6개월 후에 쉬쉬하던 그 사실을 무슨 고백 받듯이 듣던 날 이후
2주를 거의 빈사상태로 지냈고 2달 동안 아사 직전까지 갔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별이란
꼭 삶과 죽음을 갈라 놓은 극단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존재의 부재가 부재 안에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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