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방정식
어느 한 날,
영문도 모른 채 한 후배를 만날 수 없게 됐다.
전화를 걸어도 발신자 표시를 확인하고 받지도 않으며,
혹여 모르고 받게 되더라도 목소리를 확인하고는 말도 안고 그냥 끊어 버린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 후배는 오래 안 사이는 아니었지만 짧은 시간에 꽤나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
그녀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나만큼이나 밤잠이 없는 그녀의 라이프 싸이클과
나의 라이프 싸이클이 맞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 많은 그녀와 말이 없는 나 사이에 궁합이 맞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찌나 말을 빠르게 하는지,
말과 말 사이를 쉼표나 마침 점이 없는 문장처럼
빠르고 급하게 연결하는 데있어서 그녀 보다 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를 아직 본 적이 없다.
말과 말 사이를 치고 들어갈 기회를 잡지 못해서라도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면,
누구든 그녀가 하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라치면 듣는 사람의 마음도 같이 바빠져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한다.
특히 나처럼 귀담아 듣지 않는 습성이 있는 사람에겐 느닷없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상당히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엔 그녀만의 묘한 맛이 있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비유법이나,
어순을 바꿔 기습적으로 웃음이 나오게 하는 방식의 표현법들이 재미있어서 무척 예뻐 했었다.
머리가 생각을 잘 정리를 해주니까 그렇게 말을 빨리 할 수 있을 것 아닌가!하는 부러움과 함께,
말 없이 듣고 앉아만 있어도 혼자서 충분히 시간을 재미있게 죽여 나갈 줄 아는 재주에 늘 감복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말을 이어 나가는 그녀의 순발력과 회전이 빠른 좋은 머리에도 늘 감탄을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자연히 그녀는 나를 따를 수 밖에 없었고 집에도 자주 놀러 오곤 했다.
“언니 밥해 놔!” 라거나 “언니! 나 뭐 먹고싶어!” 혹은 “언니! 배고파! 지금 갈게!”라고 전화 한 통 날리고는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참고로 그녀와 내 집까지 택시비는 15,000~20,000 이 나온다. 왕복 최소한 30,000원. 고로 그녀는 단순히 밥을 먹으러 집에 오는 것이 아니다.-
한번 집에 놀러 와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새벽이 되기 일쑤였고,
그것도 모잘라 집에 가면서 전화를 했고,
또 집에 도착해서도 전화를 했는데,
짧아야 30분이었다.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닌데 하루 평균 서너 통의 전화에 어떤 날은 8시간씩이나 통화를 한 적도 있었다.
당연 듣는 게 주가 되는 통화다.
말이란 게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언어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써 역할이 아닌,
스트레스 해소용 치료 기능을 가진 의료용 도구로써의 기능을 가진 듯했다.
그녀는 그때,
그녀에게 성격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느끼기에도 해결책 없는 갑갑한 문제가 있기는 했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맘을 충분히,
너무나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답답함을 들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들어 줬었다.
그녀는 어떤 자리,
어느 상황에서든 나를 챙기는 걸로 그에 대한 보답 비스무레한 것을 하곤 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 난 아직까지 언니처럼 마음이든 물질이든 주기만하고 피드백을 원치 않는 사람은 본적이 없어.그런데 그것이 진실이 아닌 것 같아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바보 같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언니의 미덕이었더군. 난 무서운 사람이야!”라는 모호한 말을 남기고…….
ㅡ이것은 그녀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녀에게 미덕으로 보여질지 모르는 나의 행동들은 어떤 상식선 안에서 호의나 배려지 난 누구에게든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쿨하고 드라이한 사람이다. 그리고 대가성 없이 뭔가를 주고싶게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늘 즐겁다. 적어도 그들은 내게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주는 것 또한 나의 즐거움 때문에 하는 아주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임ㅡ
주변인으로부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오해랄 것도 없는 오해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오해를 풀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어찌 보면 그녀는 언어가 가진 기호를 적절하게 사용 할 줄 모르거나 잘 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정식을 풀다 보면 일일이 열거하며 푸는 사람도 있고 중간 과정을 생략하며 푸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풀든 공식에 맞추면 풀리는 것이 수학 공식이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날마다 나에게 배설하듯 하소연을 해댔듯이,
다른 문제 역시 재론의 여지없이 그녀만의 공식대로 방정식을 풀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알 것이라 짐작하고 넘어 간 일들,
모를 것이라 짐작하고 되 짚어 본 일들.
역시 나만의 방정식이 아닐까 생각 되어진다.
이야기를 하기만 했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녀!
자기만의 방정식 공식에 의해서만 문제를 풀었던 그녀!.
인간 관계가 수학의 공식처럼 대입에 의해 풀리는 것도 아니고,
방정식 공식에 비유한다는 것이 좀 우습긴 하지만,
어쩌랴!
억지라면 이것이 나의 한계인 것을.
헌데…….
그녀라면 이럴 경우 어떻게 비유했을까?
* 중요한 것은 나 역시 억지로 풀고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
짱짱 ^*^))// 방글방글.
......................................................................................................................................................
'그냥,,,그저,,,그렇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아이 오뚝이.> (0) | 2002.06.30 |
---|---|
여러개가 모여 하나가 된... (0) | 2002.06.29 |
치!치!치!치! (0) | 2002.06.26 |
본향같은 년, 놈들. (0) | 2002.06.25 |
보이지 않는 향기. (0) | 2002.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