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넘긴 여자가 전화를 받았을 때는 막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아무개라고 자신을 밝힌 그 여자는
대뜸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가 돌아가시기 전에 늘 말씀 하셨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풀어 나갔다.
환갑을 넘긴 여자는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낯선 음색의 한탄조로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베란다를 통해 커튼 틈새로 빗금을 그으며 들어 오는 하오의 광선을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나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낯선 목소리의 여자가 했던 말의 요지는 이러했다.
어머님께서 살아 생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으며 널 길러 주신 아버지는 생부가 아니고 따로 있다고…….
한 명의 언니와 두 명의 동생이 있다고…….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언니의 이름이 아무개라고 말했다.
환갑을 넘긴 여자는 아무개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개는 바로 그 환갑을 넘진 여자의 이름이었다.
환갑을 넘긴 여자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어찌된 영문인지 자세하게 물을 수도 없었으나
낯선 목소리의 여자는 묻지도 않는 말에 미리 연습을 한 것처럼 자초지종 말을 이어나갔다.
환갑을 넘긴 여자는 덥지도 차지도 않은 바람이 커튼이 펄럭이는 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반쯤은 울먹이면서도 반쯤은 반가운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웃는 것 같은 낯선 목소리를 가진 여자의 말을 들으며
내심 난색을 표명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그렇담 지금 이 여자는 나더러 언니라고 하는 말인가?
50이 넘었다며 자신의 나이를 밝힌 낯선 목소리의 여자는 딱히 언니라고 지칭하며 호명하진 않지만,
내가 당신의 동생이며 당신의 아버지가 내 생부요!라고 하는 말 아닌가?
지금까지 무남독녀로 혼자 살아 온 여자가 이제와 새삼 이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재산이 많아 유산을 상속 받아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 환갑을 넘긴 여자의 머리에 어렸을 적 장터에서 아버지와 어떤 아주머니를 만났던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아버진 그때 그 아주머니의 옆에 서 있는 작은 계집아이를 가리키며 “너랑 아주 많이 닮았지”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고 말았던 그 말이 문뜩 떠 오르면서
환갑을 넘긴 여자는 낯선 목소리의 여자를 운명처럼 동생으로 받아 들여 버렸다.
그리고…….
환갑을 넘긴 여자는 아버님 기일에 친정에 가서 어머님께 물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한 말을 하더라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님은 잠시 가만히 계시더니 하시는 말씀.
“ 알고 있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친정 어머니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와 호형호제하며 지낸 친한 친구가 있었단다.
그 친구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내였는데 아이가 너무 갖고 싶었단다.
그 친구가 아버지께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니 자식이라면 내가 믿을 수 있겠다. 니 자식이라면 내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잘 키울 수 있겠어. 그러니 니가 해 줘! 부탁한다. 꼭 너여야만 해. 그리고 약속하마. 아이가 태어나면 이 마을을 떠날게.”
아버지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어머니께 상의를 했으며 어머니는 진심이었는지 억지였는지는 모르나 그러라고 허락을 했단다.( 어머님 속내엔 혹시 아들을 낳으면 뺐어 오려는 흑심이 있었다고 한다. 어디서든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어머니를 맘 넓은 여자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친구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딸을 낳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아이가 조금 클 때까지 그 마을에 살다가
약속대로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소식을 전하며 살았는지 어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친구는 죽었고 그 친구의 친구도 죽었기 때문에 물어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낯선 목소리의 여자는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전화를 해 온 것이다.
참 쓸쓸한 인생이다.
참 쓸쓸한 인생이다.
참 쓸쓸한 인생이다.
*여기서 환갑이 넘은 여자는 나의 큰 언니이다.
아버님 기일에 못 갔을 때 이야기를 이제야 내게 들려줬다.
나는 혼돈스럽기보다 쓸쓸했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다만 쓸쓸했다.
알고도 그러라고 허락했다는 엄마도 쓸쓸했고
친구의 아이를 데리고 자기 자식인양 멀리 떠난 아버지의 친구도 쓸쓸했고
그렇게 낳은 딸을 딸이라 말하지 못하고 살다 죽은 아버지도 쓸쓸했고
남편 친구의 아이를 낳아 남편과 살아야 했던 친구의 부인도 쓸쓸했고
어딘가 생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했었던 상황도 쓸쓸했다.
무엇보다도 쓸쓸한 것은
다 늙어서 연락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아니 알려야만 했던 그 낯선 목소리를 가진 여자의 상황이었다.
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제주도에서 감귤 농장을 하고 산다더라, 한 번 가서 만나나 보자, 가서 귤이나 먹고 오지 뭐!”
참참참!!!
귤이나 먹으러 제주도까지 간다?
낯선 목소리의 여자는 귤이나 먹고 가라고 전화를 했을까?
생면부지의 피붙이에게서 느껴지는 간절함이 전이 되어
흐르는 눈물이 그치질 않는다.
아! 씨팔.
이보다 더 쓸쓸한 일이 또 있으랴!싶은 날이다.
짱짱 ^*^))// 방글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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