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2장.

monomomo 2006. 12. 7. 00:59
 

2 장


        주지실(住持室)

        도법스님은 우측 책상 옆 의자에 앉아 있다.

        40대 후반의 모습.

        사미승인 월명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월  명  (가쁜 숨을 삼키며) 죄송하구만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전해드렸으니까 곧 오실 거구만요.

도  법  …….

월  명  맨날 어딜 쏘다니는지 모르겠어요. 허구헌 날 방장스님이 주지스님을 찾아오라는데 낸들 어디 계신지 알아야지요. 이리저리 찾다가 아차 싶어 배추밭에 가보면 아, 글쎄 거기서 한가롭게 잡초를 뜯고 있다니까요. 스님, 스님, 방장스님이 찾으세요. 하면 알았다 이놈아. 하고 한시간… 반나절… 한나절… 애꿎은 저만 발만 동동 가슴만 콩알콩알. 우리 주지스님은 굼뱅이라고요.

도  법  …….

월  명  (눈치를 살피다가) 스님이 도법 큰스님이시죠?

도  법  큰스님?

월  명  스님 얘기 다 들었어요. 3년간 토굴에서 참선하셨고 또 3년간 묵언도 하시고 또 굉장한 화가이시고. 우리 절 불상을 만들려고 오셨죠? 그죠? ……  헤헤헤 다 알아요. 지가 이래봬도 이 봉국사 정보통이라구요.

도  법  아까도 배추밭에 계시던가요?

월  명  누가요? 아, 주지스님이요? 예, 거기서 맨날 산다구요. 하루 종일 배추하고 연애하는지 잡초하고 춤을 추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요.


        그때 탄성스님이 호미를 들고 등장한다.


탄  성  (도법을 힐끗 보고 나서 월명에게) 돌멩아.

월  명  제 법명은 월명이에요.

탄  성  월멩이면 어떻고 돌멩이면 어떠냐. 돌대가리긴 마찬가진 걸.

월  명  흥, 스님도 탄성이 아니라 우와 우와! 함성이랍디다.

탄  성  허허 또 저느무 잔솔배기. 이놈아, 찻물은 올려놓은 게야?

월  명  조금 전에 불을 피웠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퇴장)

탄  성  (도법에게 합장하며) 일이 있어 늦었구만. 많이 기다렸나?

도  법  바쁜 모양이지?

탄  성  무슨 차로 할까?

도  법  결명자로 하지.

탄  성  (의아한 표정으로) 결명자?

도  법  설탕을 듬뿍 타서.

탄  성  허허. 이 사람 왜 이러나. 걸신들린 사람처럼.

도  법  그렇게 됐네.

탄  성  어디서 곯은 게구먼.

도  법  (사방을 둘러보며) 쭈욱 여기에 있었나?

탄  성  응.

도  법  난 자네가 선방으로 떠난 줄 알았어.

탄  성  (도법의 건너편에 앉으며) 이게 몇년만인가. 육칠년도 넘었지?

도  법  벌써 그렇게 됐나?

탄  성  자네가 큰 법당 주불 제작을 맡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지. 재주있다는 소린 들었지만 이렇게 현실로 나타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방장스님의 주문인가?

도  법  응. 송구하이.

탄  성  송구할 거야 무어 있겠나. 방장스님이 잠시 물컹한 걸 밟은  거겠지. 얼마나 걸리겠나?

도  법  삼년쯤?

탄  성  삼년씩이나? 옛날 설화에서나 듣던 얘기군.

도  법  맞았어.

탄  성  이젠 다시 조각가로 직업을 바꾸지 그래.

도  법  마지막 작업으로 삼고 싶어.

탄  성  나가세. 산보도 할 겸. (저쪽에다 대고 큰소리로) 월명아, 찻물이 끓으면 니놈 혼자 다 처먹거라.


        둘이 걷는다. 어두워졌다.


탄  성  우리가 마지막 본 게 오대산 토굴이었을 걸?

도  법  응, 그래.

탄  성  빈 거울에 빈 얼굴이 준 화두가 결국 불상제작이었나?

도  법  글쎄. (몇발자국 걷는다) 자넨 변한 게 없어 보이네마는.

탄  성  왜 나도 많이 변했지. 이 봉국사가 날 가만히 놔두지 않아. 방장스님이사 내 것 남의 것조차 구별 못 하는 위인이니 내가 젯상 돼지대가리가 될 수밖에. (눈을 지그시 감아 돼지 흉내를 낸다)

도  법  아까 그 사미승한테 탄성스님 계시냐니까 주지스님이요? 하대. 깜짝 놀랐지. 자네가 주지라니 말이야. 봉국사가 자네의 오감(五感)을 덮어버린 건 아닌가.

탄  성  난 여길 사랑하지. (쪼그려 앉으며) 우선 소란스러운 게 살맛이 나. 그동안 절이란 곳이 너무 고요해서 생명력이 없었어. 일찍이 원효스님도 복작복작한 시장바닥에서 불성을 체득했거든. 저 별들 좀 봐. 저걸 보고 있노라면 난 아주 낮고 작아서 미물처럼 느껴지지.

        개미가 날 보면 또 그렇게 느낄지 몰라. 거대한 것을 보면 숙연해지기 마련이니까. 인생은 그런건데 그렇게 낮고 작아서 숙연해지는 것인데 왜들 그리 요란하고 굉장하게 떠드는지 모르겠어. 끝없이 한없이 넝쿨처럼 뻗어가는 욕망의 안타까운 모습들이 눈물겨워 아예 웃고 말지. 욕망도 그렇고 출세도 그렇고 모든 게 생각의 갇힘 속에 발버둥치는 한조각 뜬 구름이거늘. (일어서며) 안 그런가?

도  법  글쎄.

탄  성  또 그 글쎄군.

도  법  많이 도와주게. 그리고

탄  성  그리고?

도  법  제발이지 나의 이번 작업을 속가(俗家)의 연속으로 보진 말아주게. 미대 선생 따위와 연관짓지 말아달라는 얘길세.

탄  성  노력해봄세. 하지만.

도  법  저 서전을 비워줄 수 있겠나?

탄  성  그래. 그렇게 하지.



­암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