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1 길 (아침)
할머니 한 분과 젊은 부부, 예닐곱살 정도 먹어 보이는 소녀가 마을 길을 걸어 오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 한 마리.
젊은 부부와 할머니는 표정이 침울해 보인다.
소녀는 깨갱 걸음으로 길이 좁게 느껴 질 만큼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걷고 있다.
S# 2 바닷가 혹은 강가의 선착장 (아침)
선착장에 도착한 일행들 작별 인사를 나눈다.
자꾸만 눈가를 훔치는 할머니, 젊은 여자도 함께 눈가를 훔친다.
소녀는 이미 배에 타고 있다.
강아지도 소녀를 따라 배에 올라 꼬리를 흔들며 쫓아다닌다,
소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배, 이곳 저곳을 살핀다.
살짝 미소를 띄고 바라다보는 뱃사공.
젊은 남자,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젊은 여자의 등을 떠밀고 배에 오른다.
이때, 할머니도 배에 함께 오른다.
젊은 여자가 소녀에게 뭐라고 속삭이고 소녀는 활짝 웃으며 할머니에게 간다.
할머니, 소녀의 손을 이끌고 배에서 내린다.
뱃사공, 배에 시동을 건다.
젊은 여자, 젊은 남자의 품에서 손을 흔들며 연신 눈가를 훔친다.
천천히 떠나가는 배.
소녀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고 할머니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서 있다.
아득히 멀어지는 배.
멀어지는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소녀 돌아서자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소녀, 뛰기 시작한다.
강아지 소녀를 뒤쫓아 뛴다.
S# 3. 좁은 산길 (아침)
할머니가 걷고 있고 그 뒤로 소녀가 뛰어오다 할머니를 발견하고 뛰기를 멈춘다.
주변의 들꽃을 뜯으며 해찰을 부리며 걷는 소녀.
강아지 할머니와 소녀 사이를 오가며 뛰어 다닌다.
S# 4. 마당 (아침)
할머니, 마루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다.
마당에서 강아지와 놀고있는 소녀.
할머니, 마루에 스르르 눕는다.
DIS
S# 5. 마루 (낮)
마루 끝에 누워서 자고있는 강아지.
마루에 누워 자고 있는 할머니 옆에 소녀, 심심한 듯 하품을 하며 앉아 있다.
꾸벅꾸벅 졸다가 마루에서 떨어지는 소녀, 울음을 터뜨린다.
부스스 일어나는 할머니, 강아지도 벌떡 일어나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짖어댄다.
S# 6. 밭 (낮)
할머니는 김을 매고 강아지는 늘어지게 자고 있다.
소녀, 무엇엔가 골똘히 빠져있다.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뚜기다.
S# 7. 방 (저녁)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던 소녀, 숟가락으로 밥을 퍼 가지고 나간다.
S# 8. 마루 (저녁)
마당에서 밥을 먹던 강아지, 힐끗 쳐다본다.
숟가락을 들고 메뚜기 집 문을 열고 밥을 넣어주고 보는 소녀.
DIS
S# 9. 마루 (아침)
방문을 열고 소녀, 밥이 담긴 숟가락을 들고 나온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소녀, 메뚜기 집으로 간다.
죽어있는 메뚜기.
S# 10. 뒤란 (아침)
강아지와 뒤란에 나타나는 소녀.
손에서 메뚜기를 내려놓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메뚜기를 묻고 무덤을 만들어 준다.
나뭇가지로 비석을 만들어 세워주는 소녀.
S# 11. 방 (저녁)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던 소녀, 숟가락으로 밥을 퍼 가지고 나간다.
S# 12. 마루 (저녁)
숟가락을 들고 나오던 소녀, 빈 메뚜기 집을 보자 꼬리를 흔들고 있던 강아지에게 밥을 던져주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S# 13. 산 (낮)
강아지와 함께 산을 돌아다니는 소녀.
새의 둥지를 발견한다.
어린 새를 들고 쓰다듬으며 걷는 소녀.
S# 14. 마루 (저녁)
메뚜기 집에 새가 있다.
불린 쌀알을 강제로 먹이려 애쓰는 소녀.
DIS
S# 15. 뒤란 (저녁)
몇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작은 무덤들이 있다. 새를 묻어주는 소녀.
강아지가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
S# 16. 밭 (낮)
할머니 여전히 김을 메고 밭둑에 조용히 앉아있는 소녀.
강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벌떡 일어서서 냅다 뛴다.
S# 17. 산 (낮)
이리저리 달려 다니는 소녀.
S# 18. 길 (낮)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할머니.
S# 19. 대나무 밭 (저녁)
대나무 밭을 헤매이던 할머니와 소녀, 죽어있는 강아지를 발견한다.
S# 20. 뒤란 (저녁)
할머니와 함께 강아지를 묻어주는 소녀.
S# 21. 방 (밤)
잠을 자는 소녀와 할머니.
DIS
(아침)
소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할머니를 흔들어 깨운다.
귀를 할머니 가슴에 대 본다.
할머니 옆에 눕는다.
S# 1에서 함께 걸었던 젊은 남녀 사진이 보인다.
그 옆에 할머니 젊은 시절 사진이 보이고 소녀의 백일 사진도 보인다.
S# 22. 마을 길 (낮, 저녁)
그 동안 소녀가 돌아다니며 놀던 곳을 걸어 다니는 소녀 몽타주
S# 23. 선착장 (저녁)
해가 지기 직전이다.
해를 보던 소녀, 천천히 일어나서 물로 들어간다.
다시 나오는 소녀, 우두커니 둑에 앉아 있다.
소녀,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간다.
가슴 부위까지 들어가다 다시 나오는 소녀.
또 다시 강둑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해가 실눈썹처럼 남아있다.
소녀, 물 속으로 들어간다.
물거품 오르고 해가 완전히 진다.
암흑이다.
*
이 단편 시나리오를 쓸 때의 심정은
세상엔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으며
내가 주는 애정과 상관없이 떠날 것들은 떠난다.
즉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싶었을 때였다.
이즈음,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뭣고의 연장선상에서.
마음을 잃어 버렸었던 것이었다.
마음.
맘 붙일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원든 원치않든 생긴대로 산다는 것.
여전히 속은 시끄럽기만 하다.
난 가끔 외로워지면 활명수를 마신다.
배가 아프지 않음에도 바카스 마시듯이 마신다.
활명수 안엔 아부지의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횟배 앓이를 심하게 하던 내게 아부진 늘 활명수를 마시게 했다.
그가 몹시 그립거나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면
나도 모르게 활명수 병 뚜껑을 따고 있는 날 발견한다.
오늘도 난 활명수를 마셨다.
활명수만 마셨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건지
한 동안 심장이 벌렁거려서 이불이 들썩들썩 거릴 지경이었다.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건,
짐 하나를 덜어 놓은 셈인데
어쩌자고 더 무거워만 지는지,
내일도 또 활명수를 마셔야 하는 건지.
.
.
.
모를 일이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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