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24

어리버리 그 이후에도 여전히 어리버리.

그 늦은 약속 시간은 어머님 제사 시간이었다. 이미 제사를 다 지내고 모두들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난, 대충 인사를 하고 거실 한 켠에 마련된 어머님 영정 쪽으로 갔다. 생존 당시와 가장 가까운 시절에 찍은 영정 앞에 앉아 술을 한잔 올리고 기도를 했다. ㅡ 알지? 말 안 해도? 나 길게 말 안하고 싶어. 모를리도 없겠지만 모름 말고. 하여간 나 일 시작 했거든? 그러니까 알아서 해! 잘 되야 된다는 것도 알지? 알아서 해 줘! 믿을게. 안 오려고 하다가 왔어. 7년만에 나타나서 지 필요한 말만 한다고 삐졌다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왔어. 큰일 시작하려니까 생각 나데? 그럼 나 일어난다? ㅡ 엄마는 뭔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암말 없이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눈물을 흘릴 계획은 없었으나 ..

아부지 200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