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전 상서. 아부지! 저 드디어 영화 찍어요. 당신께서 해 주신 말씀 가슴에 잘 새기고 있어요. 사물을 보는 눈의 각도와 니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씀. 외눈박이 물고기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혹시 제가 모르고 그럴수도 있거덩? 그러면 아부지가 그러지 말라고 하늘에서 도와 줘야 해? 알았.. 아부지 2003.03.10
어리버리 그 이후에도 여전히 어리버리. 그 늦은 약속 시간은 어머님 제사 시간이었다. 이미 제사를 다 지내고 모두들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난, 대충 인사를 하고 거실 한 켠에 마련된 어머님 영정 쪽으로 갔다. 생존 당시와 가장 가까운 시절에 찍은 영정 앞에 앉아 술을 한잔 올리고 기도를 했다. ㅡ 알지? 말 안 해도? 나 길게 말 안하고 싶어. 모를리도 없겠지만 모름 말고. 하여간 나 일 시작 했거든? 그러니까 알아서 해! 잘 되야 된다는 것도 알지? 알아서 해 줘! 믿을게. 안 오려고 하다가 왔어. 7년만에 나타나서 지 필요한 말만 한다고 삐졌다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왔어. 큰일 시작하려니까 생각 나데? 그럼 나 일어난다? ㅡ 엄마는 뭔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암말 없이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눈물을 흘릴 계획은 없었으나 .. 아부지 2002.12.18
이보다 더 쓸쓸한 일이 또 있으랴! 환갑을 넘긴 여자가 전화를 받았을 때는 막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아무개라고 자신을 밝힌 그 여자는 대뜸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가 돌아가시기 전에 늘 말씀 하셨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풀어 나갔다. 환갑을 넘긴 여자는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낯선 음색의 한.. 아부지 2002.11.26
무제. 어느 날인가 아주 어렸을 때(열 살로 기억 된다)이다. 아버님께서 퀴즈를 낼 테니 맞춰 보라고 하셨다. 난 속으로 은근히 뻐기면서 금방 맞출 자신감을 가지고 그러마고 대답했다. 까짓 아버님이 내는 퀴즈쯤이야. 아버님; 솜 한 근하고 쇠 한 근하고 어떤 것이 더 무거운지 말해 봐라! 나; (열심히 생각.. 아부지 2002.11.04
장지에서. 장지에서 열두 켤레의 버선과 성경책 돋보기 봄 두더지 엉겅퀴 삐비꽃 연가처럼 들렸던 장송곡 예배를 집전하는 목사님의 흰 피부 어머니! 저승길이 험난해서 목 버선을 만들었나요? 살아서 다 못 신고 관에 넣어 가실 버선 황금빛 고쟁이를 태우면서 이 땅에 둔 것 없이 다-아- 태워 드렸다. 짱짱^*^))//.. 아부지 2002.09.06
용서 할 수 없었다. 생일날 1 -그때 엄마가 몰랐던 것, 나는 지금 모르다- "여름이었디......겁나게 뜨건 날이었어야......인자 나는 쩌짝에다 다라를 놓고 이짝 나무 그늘에 서서 너를 보듬고 있었제잉. 그 괴기도 쪼까 뜨겄을 것이다. 사람들이 인자 그 괴기를 살라고, 엄마요? 하고 물어보먼아, 고개로 이짝 저짝 갤침시로 .. 아부지 2002.09.05
어떤 이별. S#1>마을 전경(낮)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 멀리 바다가 보이고, 낮은 능선이 포개져 이어진 산이 마을을 감싸 안은 듯이 보인다. 마을 앞에 있는 저수지와 마을 사이에 짙은 황토색 신작로가 나있다. S#2> 신작로 (1969년 봄, 낮)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여름 한낮. 햇볕을 받아 길 가 밭둑에 무성하게 자.. 아부지 2002.09.05
사내의 양심. 사내의 양심. 괜찮아! 괜찮아! 난 괜찮아! 그러니 당신 건강이나 잘 챙겨! 도려낸 앞 가슴과 여성성을 거세당한 아내 앞에서 사내는 밤마다 자신을 위로했다. 사내의 위로에 안심을 한 아내가 잠든 후 사내는 밤마다 붉은 네온이 번쩍이는 선창가로 나가 울긋불긋 차려 입고 화려하게 화장한 여인들의 .. 아부지 2002.08.22
절망하지 않기 위해. 절망하지 않기 위해 난 달리기를 잘한다. 누워서도 달리고, 앉아서도 달리고, 서서도 달린다. 늘 달아나려 했기 때문인지 실제로도 잘 달린다. 숨어있던 나를 겉으로 내 빼준 유일한 상황. 늘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 않던 나를 보이게 해 줬던 가을 대 운동회 난 그때 “나 여기 있었어요. 맘껏 구경하.. 아부지 2002.07.25
아버님의 사랑 아버님의 사랑 1 감을 딴다. 이파리 하나 달리지 않은 하늘로 뻗은 잔가지에 매달린 빨갛게 익은 감을 딴다. “담장 옆으로 뻗은 가지 감은 따지 마라. 그 집 햇볕 받았으니 그 집 감이란다. 높은 곳에 있는 감도 따지 마라. 옛날부터 까치 먹으라고 남겨 두는 법이란다.” 감나무 밑에서 아버님은 시종.. 아부지 2002.06.16